「내 몸을 미워하느라」, 하림

「내 몸을 미워하느라」, 하림

1.
다시는 볼 일이 없겠지만 나에게는 영영 무례한 사람으로 이름 석 자가 또렷이 기억될 고등학교 동창이 있다. 지금 어딘가에서 예의를 갖춘 사회인으로서 지내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든가 말든가, 그는 나에게 수치심을 덩어리째 안긴 사람일 뿐이다.

내가 다닌 여자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들 간에 뜬금없이 가슴을 만지는 것이 일종의 놀이처럼 퍼져 있었다.
“와, 가슴 개 커. 부럽다.”
누군가가 짓궂은 표정을 한 채로 갑자기 손바닥을 친구의 가슴에 갖다 대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교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들었다.

나는 누가 장난이랍시고 내 가슴을 만지는 게 정말 정말 싫었다. 모두가 같은 교복을 입다 보니 내 작은 가슴이 다른 친구들과 비교되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도 큰 스트레스였다. 특히 여름에 하얀 반소매 교복을 입을 때면 매일 내 가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엄마가 사다 준 브래지어를 입었는데, AA사이즈를 입어도 캡 위쪽이 내 살에 착 붙지 않고 뜨는 공간이 생겼다. 다른 사람의 팔이 내 윗가슴에 실수로 닿기라도 하면 브라 캡이 내 몸 쪽으로 폭 꺼지지 않을까 상상하기만 해도 창피했다. 하지만 나는 직접 브래지어를 입어 보는 매장에 찾아갈 용기가 없었기에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매장에 가서 가장 작은 것을 입어 봐도 맞는 것이 없으면 어쩌지?’ 상상하니 끔찍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매장 직원의 당황하는 표정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내 몸이 더 부끄럽게 여겨질 것만 같았다. 맞지 않는 브라를 입은 나는 옷차림이 얇아지는 여름마다 내 빈약한 가슴을 누가 건드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앞서 말한 무례한 그 애는 친구도 아니었다. 안 좋은 감정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말을 섞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서로의 존재만 알고 있는 옆 반 학생이었다. 접점이라 하면 그 애와 나는 야간자율학습시간에 공부하도록 배정된 자리가 가까웠다는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주변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 어정쩡하게 같이 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복도에서 일대일로 마주치면 인사할지 말지 망설이게 되는 그런 사이였다.

어느 날 교무실 앞에 반소매 교복을 입은 나와 그 애, 그리고 다른 학생들 네다섯 명이 둥글게 서 있었다. 내 앞에 서 있던 그 애는 아무 맥락도 없이 내 가슴 위에 지 손바닥을 턱- 올려놓았다가 뗐다. 그리고는 자기 옆에 있는 친구를 쳐다보며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와, 진짜 없네.”
나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뭐야, 쟤네 나 없는 데서 내 가슴 얘기를 한 거야?’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화도 못 냈다. 나와 그 애를 둘러싼 공기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뗐다. 그 애의 짧은 말 한마디와 표정만은 내 가슴속에 단단히 박혔다.

그 날은 내 가슴이 작다는 사실이 누군가의 입에서 오르내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진 날이었다. 유독 보통에서 훌쩍 벗어나는 것 같은 내 가슴을 다른 사람들도 의식할 거라는 두려움이 건드려졌던 것이다.

그때 느낀 수치심을 학교 복도에 내버려 두지 못하고 졸업을 했다. 교복을 입지 않은지 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된다.


2.
샤워할 때 거울에 비치는 내 몸을 불만족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한 때부터 친구들과 찜질방, 온천, 수영장에 가는 것을 피했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공용 샤워실에서 어쩔 수 없이 맨몸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이다. 아,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서핑을 할 기회가 찾아왔을 때에도 같은 이유로 마다했다. 두둑한 볼륨패드가 들어있는 브라를 벗고 나서 드러나게 될 내 납작한 가슴에 친구의 시선이 잠깐이라도 머무른다면 나는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지금껏 주기적으로 모이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다 같이 찜질방 가자”고 했을 때에도 나는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거리낌 없이 가슴을 소재로 장난을 치고 별명을 붙이던 시절을 같이 겪은 그들이기에 더더욱 찜질방 모임은 피하고 싶었다. 친구들이 주황색 수건으로 양머리를 만들고 찍은 셀카가 단톡방에 올라왔다. 사진 속에 누구는 안마기에 누워 해맑게 웃고 있고, 누구는 식혜에 꽂은 빨대를 입에 물고 있고, 옆에는 둘러앉아 삶은 계란을 까먹은 흔적도 보였다. 언젠가 나도 이런 즐거움을 친구와 함께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몇 해 전 겨울, 내가 혼자 살던 속초 집에 지예가 놀러 와서 며칠간 같이 지냈다. 놀러 가고 싶은 곳 있냐고 물으니, 그녀는 근처의 척산온천에 노천탕이 있다며 가자고 했다. 지예는 나랑 시간을 보내러 서울에서 속초까지 왔고, 나도 그녀와 놀려고 시간을 비워둔 참이었기에 아무래도 둘러댈 핑곗거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예랑 같이 온천에 가볼까?’ 하는 쪽으로 내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그녀는 내 몸을 봐도 별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서 왠지 안심이 되었다. 순전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내 작은 가슴을 뽕브라로 감추려고 하는 열등감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것은 십 년에 걸쳐 지속해온 지예와의 관계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감각이었다. 함께한 시간이 길었을 뿐만 아니라, 지예와 대화를 할 때면 내 머릿속 생각 회로와 아주 비슷한 것이 그녀 안에서도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우리 사이에선 이런 식의 대화가 자주 오고갔다.
“어, 너가 그 말 할 것 같았어.” 상대가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면,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여기서 '너’는 지예이기도 했고 ‘나’이기도 했다.
우리는 기질적으로 닮은 면이 많은데다가, 둘 다 자신을 알아가려 부단히 애쓰는 동안 어느새 또 비슷한 결로 변화하고 있다고 느껴왔다.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자주 하는 우리는, 각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야를 넓혀가는 과정을 지켜봐온 사이였다.


3.
지예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온천에 가게 되었다. 우리는 무릎까지 오는 롱패딩을 입고 김밥 모양이 된 채로 척산온천 건물에 들어섰다. 여자 탈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똑같지 않은 맨몸들이 보였다.

평소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는 지예는 탈의실에서 안경을 벗자마자,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크고 굵은 글씨로 쓰여 있는 샤워실 표지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이제 저 글씨도 안 보여. 나 잘 데리고 다녀야 해.”
내 몸도 흐릿하게 보일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 나도 옷을 훌렁훌렁 벗고 수건을 두르지 않은 알몸으로 지예와 함께 샤워실로 향했다.

“이번엔 어느 탕에 가볼까?”
둘이 들뜬 마음으로 이 탕 저 탕 골라 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미지근한 탕에서 수압이 세게 나오는 곳에 등을 대고 나란히 앉아 물 안마를 받았다.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걸걸하게 “으어어아” 소리를 내는 나를 보고 지예가 키득거렸다.

“몸을 좀 데피고 노천탕에 갈까?”
뜨거운 탕에 조심스레 발부터 서서히 몸을 담갔다. 한참을 있다가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져서 지예와 눈짓을 교환하고 탕에서 나왔다. 둘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야외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개운한 공기를 마시며 계단을 종종걸음으로 올랐다. 탕에 들어가기 전, 물을 바가지로 퍼서 발에 끼얹었다. 탕 속에 들어가 편백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의자에 앉았다. 고개를 들자 노천탕을 둘러싼 나무 울타리가 높이 솟아있었고, 그 가운데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알몸으로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물속에 동시에 있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앞으로는 혼자 위축되어서 이런 즐거움을 포기하지는 말자고 그때 다짐했다.

다들 벌거벗은 채로 다니는 온천에서는 내가 그토록 감추고 싶어 하던 가슴도 몸의 일부로서 그대로 드러났다. 한 명 한 명 가슴의 크기는 물론이고, 살이 처진 정도, 골반의 너비, 다리의 각도, 몸이 굽은 정도 등이 제각기 달랐다. 어떤 몸이 보통에 속하고 어떤 몸이 그렇지 않은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다른 사람이니까 당연하게도 몸이 다 달랐다.
내 몸도 그저 다양한 몸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날 나는 조금 가벼워졌다.


「내 몸을 미워하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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