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을 찾아서」, 샐리
나는 홍제동에 살고 있다. 우연히 이 동네에 왔다가 홍제천 변에 살랑거리는 버드나무를 보고 반해 서울에 산다면 꼭 이 근방에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시간이 흘러 5년간 지낸 목포 생활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와 홍제천 근처 친구 집에 얹혀살았다. 친구는 천천히 집을 구해도 된다고 했지만, 남의 집에 사는 건 영 불편했기에 얼른 집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크기가 작아도 투룸처럼 공간 분리가 되어 있고, 가격은 전세 1억 이내로 구할 수 있는 곳을 원했다. 홍제천 근처 동네의 매물을 샅샅이 뒤졌지만,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일단 서울 물가는 너무 비쌌다. 마음에 드는 집은 전세금 2억이 훌쩍 넘거나 만 34세 이하 청년들을 위한 HUG나 버팀목 대출이 안 되는 곳이 허다했다. 조금 눈을 낮춰 반지하에 살아볼까 싶었지만, 어릴 때 살았던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던 반지하 집이 생각나 금방 마음을 접었다. 목포에서는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5만 원에 방 세 칸짜리 집에서 살았는데, 그 가격으로는 허름해 보이는 반지하에서 밖에 못 산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홍제천 근처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새벽까지 여러 부동산 앱을 보다 잠들고, 낮에는 부동산에 들러 미리 눈여겨 본 매물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예상보다 방 구하기 여정이 지체되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부동산 앱을 보고 있던 중 다방 앱에 올라온 매물 사진 한 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사진에는 동글동글하게 깎은 나무와 다양한 식물이 가득한 정원과 그 풍경이 훤히 보이는 방이 보였다. 그게 꽤 운치 있어 보였고, 무엇보다 가격이 괜찮았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정말 매력적인 금액이었다. 다시는 보지 못할 매물이란 걸 직감하고 그 매물을 올린 부동산에 당장 전화했다. 머리보다 손이 더 빨랐던 순간이다. 말투가 느릿한 사장님께서 지금 부동산으로 오면 된다고 하셔서 후다닥 양치하고 달려갔다. 친구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라 금방 도착했고, 사장님과 걸어가며 동네와 보러 가는 집에 관한 이야기를 요모조모 들었다.
“여기 동네가 3, 40년 정도 산 사람들이 많은 동네예요, 나도 2대째 부동산하고 있고요. 지금 가는 집은 단독주택이고 옆에 집주인이 사는데 인품이 좋아서 동네 사람들한테 평판도 좋고, 일절 간섭을 안 해. 월세 올릴 생각도 없대. 실제로 보면 7평 면적보다 더 넓게 빠진 집이라 혼자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거야. 어제 3명이 이 집 보고 갔어~ 언제 나갈지 몰라~”
5분쯤 걸어서 도착한 집은 만화 ‘짱구는 못말려’에 나올 것 같은 2층 단독주택이었고, 집주인이 사는 곳 왼편으로 가면 매물로 올라온 집이 있었다. 도어락이 아닌 열쇠로 여는 현관문과 연한 하늘색으로 칠한 미닫이문, 작은 거실과 방 하나, 부엌과 화장실로 구성된 집이었다. 작은 거실에서 보이는 정원에는 집주인이 정성스레 가꾼 식물이 가득했다. 정겨운 분위기의 정원에 홀랑 마음을 뺏겨 당장 부동산 계약을 했다.
집 주변 공원에는 부동산 사장님 말대로 오래 사신 듯한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계시고,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사는 연합 기숙사가 있어 젊은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빨간 벽돌 건물에 티크 소재로 된 가구가 예뻐 보이는 집, 베란다에 화려하고 튼튼해 보이는 식물을 2단으로 빽빽이 채운 주택, 반원 모양 창문에 밤마다 고양이가 내려다보고 있는 빌라, 족히 50년은 산 것 같은 나무와 주민들이 키우는 식용식물들이 가득한 오래된 아파트 등 다양한 모습으로 집들이 존재한다. 각자의 생활 방식에 맞게 집 주변을 가꾸어나가는 동네에 산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마을버스 정류장이, 길 건너서 내려가면 홍제천이 나온다. 홍제천에는 러닝에 미친 것 같은 사람들이 아침, 저녁으로 줄을 지어 달리고, 따릉이가 심심치 않게 지나다닌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진짜 폭포인 척하는 인공 폭포가 나오는데, 밤 10시가 되면 성실하게 꺼진다.
그 길을 따라 주방세제, 샴푸, 병아리콩, 커피 원두 등을 소분해서 구매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카페 ‘보틀라운지’와 누가 와도 원래 알던 사람처럼 환대해 주시는 짜이집 ‘뭍’이 있고, 부모님과 함께 일하며 제철마다 안주가 바뀌는 동네 술집 ‘또또’가 있다. 그곳에 여러 번 방문하다보니 알게 되는 이웃들이 조금씩 생겼다. 반려견을 데려온 분들과는 강아지가 너무 귀엽다고 말하면서, 카페 사장님과 바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다 옆 손님도 합류해 아는 사이가 되는 식이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동네에 주민이 됐다는 느낌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1000에 30으로 구한 집 또한 마음이 쏙 들었다. 60년 된 단독주택이라 밖에서 벌레가 들어오기도, 불법 증축물로 추정되는 부엌에 비가 오면 곰팡이가 필락 말락 했다. 하지만 하늘색 미닫이문으로 분리되는 작은 거실과 방의 구조와 거실 창문을 열면 솔솔 들어오는 바람, 봄이 되면 정원에 앵두나무꽃과 라일락이 보이는 게 좋았다. 그리고 퀸사이즈 침대와 가로 1,800mm의 큰 테이블, 수백 권의 책을 들여다 놔도 넉넉한 크기의 공간이라 내 입맛대로 구조를 옮기며 집을 꾸밀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좋아 그 안에서 할 일들을 찾았다. 혼자 있을 땐 콤부차, 장아찌, 동치미 등 오래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하거나 코바느질로 파우치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종종 친구들을 초대해 냉이솥밥, 호박수프, 시오콘부 파스타 등을 만들어 함께 나눠 먹곤 했다. 가끔 집주인 어머니께 대저 토마토나 콤부차를 나눠드리면 지긋이 웃으시며 직접 담근 알타리김치와 파김치를 나눠주셨다. 비슷하게 생긴 자이, 푸르지오 같은 아파트보다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생긴 주택이 즐비한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게 좋았다. 정감 있는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야지, 마음먹었다.
그러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작년 가을, 내가 사는 홍제동이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편의점 사장님께 전해 들었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 사업 예정지구에 선정됐다나 뭐라나. 편의점을 나오는 길에 ‘3080+ 도심 복합 사업 고은산 서측 지구 지정 동의율 30% 돌파!! 3월 말까지 66%가 넘으면 본 지구 지정에 유리해집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그걸 보니 집을 구하던 때의 초조함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재개발은 먼 동네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우리 동네도 해당한다니, 고작 2년밖에 살지 않았는데. 머지않은 미래에 이사해야 한다는 아찔함이 앞서기도 했고,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가지각색의 집들이 즐비한 동네가 어딜 가나 비슷해 보이는 아파트촌이 된다니, 우리나라는 개발하지 못해서 안달일까. 나같이 돈 없고 한적한 동네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 가서 살라는 걸까.
「나의 집을 찾아서」
- 발행일 2026년 5월 11일
- 글쓴이 샐리 @sallyyoon
- 작은배가 진행하는 <일상묘사 : 수필 합평 모임>에서 탄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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