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는 길」, 고구말랭이
“쫑효야, 이제 진짜 일어나야 해~ 열 시가 넘었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이면 종효는 유난히 늦장을 부린다. 잠은 일찌감치 달아난 똘망똘망한 눈을 뜨고서 좀처럼 이불을 털고 일어나질 못한다. 이를 닦으러 갈 때도, 양말을 찾아 신을 때에도 세월아 네월아 뭉그적거릴 뿐이다. “느릿느릿 느릿느릿….” 구령까지 붙여가면서 말이다. 다른 날 같으면 종효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해대고도 남았겠지만, 오늘은 그 모습이 애처로워 가만히 바라만 본다. 느릿느릿 움직이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라도 하는 걸까. 이 아침, 시간이 천천히 가길 바라는 사람은 아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짐을 챙겨 밖을 나서니 하루 사이 봄이라도 온 것인지 해가 포근하다. 아이와 헤어지는 날에 날씨라도 좋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나는 틈틈이 종효의 얼굴을 살핀다. ‘이번엔 안 울고 잘 가려나….’ 부질없는 바람에 주먹질이라도 하듯, 탑승교로 들어서자 곧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예전엔 아무 데서나 울고 떼쓰던 종효가 이젠 철이 좀 들었는지 소매로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슬프면 슬픈 대로 애처럼 울기라도 했다면 차라리 내 마음이 더 편했을까 싶다.
종효는 비행기 창가 자리에서 밖을 내다보며 연신 하품을 한다. 이 아이는 울고 싶을 때마다 하품하는 버릇이 있다. ‘이거 봐! 나 지금 하품해서 눈물 나는 거다! 우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려는 듯 아주 크게 “하~암!”하고 소리를 내면서. 나는 모르는 체하며 안전띠를 고쳐 매주고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
“이번 방학에도 우리 재밌게 놀았다. 그치?”
내 말에 종효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삼키며 창밖 풍경에 온 신경을 쏟는다. 비행기가 지면에서 멀어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종효는 곤히 잠에 든다. 내 어깨에 내려앉은 따뜻한 숨결에, 곧 마주해야 할 아이의 빈자리가 자못 쓸쓸하다.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정적을 깨는 기내 방송이 울려 퍼지고, 이제 헤어짐이 코 앞으로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안전띠 표시등이 꺼지자마자 좁은 통로에 몸을 밀어 넣는 사람들 틈에 우리는 잠자코 앉아 있다가 맨 나중에야 일어선다.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승강장 앞에 멈춰 선 나는 몸을 반쯤 수구려 아이에게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넨다.
“이거 집 가는 차비하고 나머지는 종효 먹고 싶은 거 사 먹어. 잃어버리지 않게 지갑에다 잘 챙겨.”
“웅…”
지폐를 받아 들고 끝내 울음을 터뜨린 종효는 쌩하고 뒤돌아 택시로 향한다. 어깨를 들썩이며. 흐엉 ㅡ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종효를 붙잡아 세운 나는 아이를 토닥인다. 한참 울던 종효는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어설픈 웃음을 띠더니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을 손등으로 쓱쓱 닦아낸다.
“여름 방학에 엄마 집에 또 올 거지?”
“웅 ..! 또 만나.”
종효가 돌아선다.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그냥 그대로 간다. 아이를 태운 택시가 가물가물 점이 되어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발을 떼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창밖을 내려다보니 도시는 어느새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다. 빼곡하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에서 잔잔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그 안에 어느 가족의 단란한 저녁을 상상해본다.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아이의 이부자리를 봐주던, 너무나 당연해서 지루하기까지 했던 나의 지난날은 이제 남의 일이 되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해 생각한다.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전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에게 아이를 맡겨둔 채 홀연히 제주로 떠나왔다.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아이의 심정 같은 건 내 안중에 없었다. 편하게, 재밌게,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겠다며 내가 했던 선택. 그 선택으로 인해 지금의 만족스러운 삶이 있고, 내 아이의 눈물이 있다. 나는 일그러진 얼굴을 무르팍에 묻은 채 소리 없는 울음을 뱉어낸다. 내 아이의 눈물과 바꿔 얻어낸 자유란 과연 내게 얼마큼 가치 있는 일이었을까.
「집에 가는 길」
- 발행일 2026년 5월 11일
- 글쓴이 고구말랭이
- 작은배가 진행하는 <일상묘사 : 수필 합평 모임>에서 탄생한 글입니다.
- Zine으로 만들어 읽기
PDF 파일을 A4 용지에 출력한 후 8페이지 Zine 만드는 법에 따라 자르고 접으면, 글이 담긴 Zine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집에 가는 길」, 고구말랭이
· 「어떻게 낳을 것인가」, 고은비
· 「나의 집을 찾아서」, 샐리
· 「미레에게」, 윤재
· 「내 몸을 미워하느라」, 하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