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셀프 인테리어 회고
어제보다 1% 나아진 기분으로 퇴근하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문제와 해결의 연속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가게 인테리어를 시작한 지 28일째, 수도 연결을 마지막으로 인테리어 공사가 끝났다. 마지막까지 쉬운 일은 없었다. 갑자기 물이 끊겨서 옥상을 오르내리며 수도관을 살폈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고, 설상가상 옆집 화장실 수도까지 끊겨버렸다. 설비업자도 원인을 찾지 못해서 결국 시청 상하수도과 직원을 불러야 했다. 다시 나오는 물을 봤을 땐 정말 눈물이 날 뻔했다. 꽉 졸여있던 마음이 그 순간 완벽하게 녹아내렸다.
돌이켜보면 하루하루가 오늘과 비슷했다. 완전히 초보일 수밖에 없는 공사 현장에서 나는 늘 초긴장 상태였다. 변수를 다루는데 약한 편이다 보니 갸우뚱하는 업자의 고개만 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했지만 그때까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나를 보면서 옆 가게 사장님은 '왜 그렇게 꼼꼼하게 챙기려 하냐'며 걱정했고, 공사 과정을 함께한 아버지는 '계획은 틀어질 수 있지만 결국엔 원했던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나를 다독였다.
계획보다 중요한 것
계획과 공부는 시작 전까지만 유효했다. 현장에서는 계획을 챙기고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려는 마음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페인트 작업이 시작되는 날이었는데 강단이 현장에 들렀다. 분주한 작업자들을 보며 강단이 물었다. '오늘은 어떤 작업 하는 거야? 여기도 칠하나?' 나는 답했다. '나도 잘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에 서서 다음은 무엇일지 지켜보는 것뿐이야.'
가만히 서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는 일은 정말 어렵다. 내가 직접 하면 더 잘 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 아니다. 직접 한다면 모든 변수를 예상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 오만한 것이다. 내가 딱 그런 상태였다. 하지만 놀랬다가 안심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나에게도 조금의 여유가 찾아왔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하게 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마음이 유연한 사람이 무조건 승자다.
교육비용 4500만 원
우리가 잡은 인테리어 예산은 4500만 원이었다. 곳곳이 망가진 20평 공간을 멋들어진 식당으로 바꾸기엔 부족한 금액이지만 우리에겐 아주 큰 돈이었다. 이 돈을 비싼 교육비라 여기며 공사 내내 열심히 공부했다. 어깨너머 배워야 하는 탓에 아주 천천히 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평생 모르고 살았던 단어들을 이제는 술술 내뱉을 수 있게 되었고 나도 반 셀프 인테리어를 '해본 사람'이 됐다. '한 번 더 하면 진짜 잘 할 수 있는데' 이 말을 공사 내내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그 보다 큰 깨달음은 따로 있다. 결국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는 것. 그러니 오늘은 오늘의 문제에 집중하고 조금씩 나아가면 된다는 것. 물론 마지막 날까지 찔끔 울어버린 나는 여전히 겁쟁이지만, 어제보다 1% 나아진 기분으로 퇴근하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나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해본 적 없는 식당 일을 코앞에 둔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 나중을 위해 기록하는 '이렇게 할걸' 리스트
- 벽을 석고보드로 마감하지 말고 콘크리트 벽 그대로 쓸걸. 목공, 페인트 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 전기 작업자는 일당 대신 건으로 고용할걸. 여러 번 와서 해야 하는 전기, 수도, 덕트 등의 작업은 일당이 더 많이 든다.
- 목공 자재비를 아끼지 말고 더 쓸걸. 좋은 나무와 안 좋은 나무의 차이는 크다. 마감재에 돈을 아끼면 안 된다.
- 하루도 빠짐없이 공사 현장을 지킬걸. 딱 한 번 물건을 사러 나간 사이, 합판으로 마감할 부분에 하얀 페인트가 칠해졌다.
- 조명, 주방 후드처럼 마감 후에 다는 제품은 설치할 때 조심해달라고 할걸. 섬세하지 못한 작업은 벽에 상처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