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비건 식당인가
'깊게 몰입해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CHEESYLAZY를 시작했다.
'깊게 몰입해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CHEESYLAZY를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첫 창업 아이템이 꼭 '비건 식당'일 필요는 없었다. 재밌게 집중해서 임할 수 있고, 0부터 창작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른 선택지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비건 식당일까? 나는 1) 오프라인 업종 중에서 2) 우리가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3) 트렌드를 떠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을 원했으며 4) 일의 영향력이 긍정적이길 바랐다.
높은 수준의 주체성
우리가 원하는 방향, 방식, 속도를 최대한 유지하고 싶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물건과 재능을 판다. 나 역시 온라인에서 샐러드를 팔고 마케팅하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시장에서 뒤처질까 두려워하거나, 쏟아지는 파트너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다 끝나는 하루가 정말 좋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목표 혹은 경쟁이라는 단어를 더 나은 판단을 보류하는 핑계로 삼아야 하는 것도 답답했다.
가파른 성장세나 확장성을 피하는 편이 오히려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 구심점을 단단하게 두고, 가끔은 재밌는 프로젝트도 덧붙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우리에게 잘 맞는다고 판단했다.
오래 할 수 있는 일
내가 평생 할 수 있겠다 싶은 작업을 고민했다. 그것이 바로 '요리'와 '손님 접대'였다. 집에 손님을 초대하고, 요리할 메뉴를 고민하고, 좋은 음악을 고르고, 청소를 하는 일이 단과 나의 공통된 취미였다. 우리의 취향을 함께 좋아해 주고 편안함을 느끼는 손님들의 표정은 아주 큰 기쁨이었다.
더구나 나는 생각과 걱정이 많은 성격이지만, 요리를 하는 순간에는 오롯이 현재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에게 요리는 일종의 명상이다. 요리를 직업으로 삼은 적은 없지만, 남은 생에 하나의 직업을 골라야 한다면 셰프가 되고 싶었다.
오래갈 수 있는 일
그저 트렌드나 유행을 따라서 업을 고르고 싶진 않았다. 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일을 선택하고 싶었다. 많은 비즈니스가 뜨고 지지만, 요식업만큼은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니 앞으로도 오래갈 수 있는 업이라고 생각했다.
샌드위치 역시 마찬가지다. 오래된 음식이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메뉴지만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클래식한 샌드위치에 우리의 색깔을 조금 더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지속 가능한 가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오래 할수록 좋은 일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에 끼칠 영향력을 생각하게 되었다. 거대한 가치를 만들어내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세상에 해로운 일을 하기는 싫었다. 비건 식당을 고민하게 된 이유다.
맵고 짠 김치찌개나 육즙이 가득한 햄버거는 맛있지만 평생 먹을 수는 없다. 몸이 아프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매일 먹어도 몸에 해롭지 않은 음식을 만들고 싶다. 언젠가는 먹을수록 몸에 좋은 음식도 만들고 싶다. 더불어 우리가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과 제품에 담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물론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논리적인 의사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돌아보니 그랬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CHEESYLAZY를 운영하면서 시작할 때의 마음과 다짐을 잊지 않고 유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