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제주로 (1편)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간다는 두려움이 더 커졌을 때 비로소 퇴사라는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소신입니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치지레이지에 알바생 '마고'가 출근하고 있습니다. 마고는 저의 대학교 친구인데요.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 여행을 온다길래 일주일 정도 가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습니다.
일과 삶에 진심인 마고의 이야기를 더 많은 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마고의 글을 뉴스레터에 담아 보내드려요. 친구의 앞날에 큰 힘과 응원을 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몇 년째 벼르기만 하던 퇴사를 저질렀다. 이직을 생각하면 퇴사하기에 썩 좋은 시기는 아니다. 경기 불황이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고, 먼저 이직을 시도한 지인들은 채용 공고가 별로 없어 이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스타트업씬은 황금기를 지나고 있는 건지, 곧 지나갈 잠시간의 고난을 견디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알만한 회사마저 문을 닫거나 정리해고, 희망퇴직 소식을 줄줄이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우리 회사는 인원 감축 하나 없이 계속 성장해 나가며 끊임없는 사업 확장의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게다가 이렇게 유망한 회사에서 갓 서른을 넘긴 나는 10명이 넘는 팀의 팀장이었다. 이런 직장을 대책 없이 그만둔다는 것은 경기 현황과 구직시장 그리고 나의 시장 가치 등 이것저것 따져봤을 때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몇 년 동안 고민만 하고 참아 온 퇴사라면, 지금은 더더욱 아니어야 했다.
나는 입사 후 줄곧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사실 진심은 아니었다.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전혀 없는 스타트업에서 고민이 깊어질 때,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가 한숨처럼 자연스레 내뱉었던 타령 정도였다고나 할까. 퇴사하고 싶다는 말 뒤에는 ‘잘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괴롭다’는 일에 대한 욕심과 책임감이 항상 존재했다. 퇴사하고 싶다는 입버릇이 무색하게, 나는 회사가 열 명 남짓한 작은 규모였을 때 합류해서 백 명이 넘는 규모로 클 때까지 함께하며 성장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퇴사하고 싶다’는 말에 다른 이유가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건 ‘이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내 안의 꼰머씨가 나타나서 말했다. ‘너는 무슨 그런 현실 감각 없는 말을 하니.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는 거야. 원래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야.’라고.
머릿속 한 켠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자아1과,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자아2가 다툼을 했다. 이와 동시에 현실에는 해내야 하는 많은 일과 동료와의 갈등이라는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짙어질수록 현실에서의 전쟁은 더 이상 해결할 이유도, 겪어야 할 이유도 없는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다. 진심이 향하지 않는 영역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고 나니 더 이상 눈부신 발전을 해낼 수 없었다. 어느새 나는 그냥저냥 일하는 회사원1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마음속의 갈등, 해결할 이유를 느끼지 못해 방치된 현실의 문제들, 그리고 무책임한 내 모습. 모든 것이 버거운 날이 계속되면서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결국 나는 한 달간의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 일과 거리를 두고 내가 마주한 문제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지금껏 회사에서 허비한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은 내가 살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되어 주지 못하고, 오히려 내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야 눈앞에 주어진 일을 하면서 힘든 와중에 가끔은 웃기도 하고, 이따금씩 보람 같은 것도 느끼면서 회사를 다니는 일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러다 보면 어린 날의 고민을 추억하며 ‘내게도 어리광 부리던 시기가 있었지’하고 떠올리는 수십 년 차 사회인이 되어 있는 미래도 충분히 개연성 있어 보였다.
하지만 불과 2~3년 간의 시간도 이렇게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더 이상 내가 원해서가 아닌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정의된 역할로 나의 시간을 채워서는 안 되겠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회사에 속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간다는 두려움이 더 커졌을 때 나는 비로소 퇴사라는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내 생각이 사치스럽고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는 것은 나 자신이기에, 그 생각을 감히 한번은 좇아 보자고 결심했다.
걷기만 해도 스멀스멀 땀이 나기 시작하는 초여름, 그렇게 나는 한낮의 땡볕 아래 땀 흘리며 앉아 아무 생각을 안 해도 되는 백수의 날을 마주했다.
어떠한 계획도 없지만 생각보다 불안하지 않고, 생각보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스스로가 의아했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뛰어들 그 미래 앞에 맷집 있는 인간이 되어 있고 싶다. 쉬는 동안에 나는 마음과 몸을 건강히 다스리고 싶었다.
그러자 누구보다도 나답게, 건강하게 살고 있는 제주의 은비가 떠올랐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보지 못하는 친구를 보고 싶다는 마음 반, 그녀의 삶에서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한 힌트를 얻고 싶다는 마음 반으로, 제주도로 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