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되고 싶은 백공
평생을 반복해 온 고민이 나를 다시 찾아오고야 말았다.
7월 10일을 이삿날로 정하고 자질구레한 일이 많아 조급한 요즘이다. 이사 갈 집을 직접 고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맞춤 제작한 싱크대를 부엌에 설치하는 날이었다. 배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아빠 찬스를 썼는데, 아빠는 친구 찬스를 썼다. 그 바람에 아빠의 소꿉친구이자 목수로 일하는 삼촌, 아빠, 강단과 내가 짐을 함께 나르게 됐다. 장마의 초입, 무더운 날씨에 땀을 한 바가지 쏟고서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집 앞 식당으로 향했다.
목수 일을 어디서 배웠냐고 묻자 삼촌은 ‘배우긴 뭘 배워 독학했지’라며 직접 만든 작업물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삼촌이 내미는 사진을 흥미롭게 보다가, 나는 아예 삼촌의 핸드폰을 손에 쥐고 사진첩을 훑기 시작했다. 가정용 대형 가구는 물론 실내 계단, 야외 벤치, 정자, 개집까지. 못 만드는 것이 없는 만능 목수였다. ‘삼촌은 두 손이 무기네요’라며 감탄하는 나에게 아빠가 말했다.
“백공이라고, 옛날에는 백 가지 일을 잘하면 굶어 죽기 딱 좋다고 했거든, 하나를 잘해야 먹고 산다고이. 그런데 세상이 완전히 뒤집혀 버련. 이제는 이것저것 잘해야 먹고 살지.”
어릴 적부터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었다. 동시에 나는 특별히 못 하는 것도 없었다. 능력치는 평타인데 관심사가 넓어서 한 가지 일에 들러붙지 못하고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생겨 먹은 것과 달리 마음속으로 늘 다른 꿈을 꿨다.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을 찾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다.’ ‘작더라도 내 분야에서만큼은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 물론 무엇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취업을 준비하던 중 봤던 면접 하나가 떠오른다. 자신을 소개해 보라는 질문에 ‘저는 관심사가 워낙 다양해서’라고 답변을 시작했다가 면접관에게 답변을 빼앗겼던 적이 있다. ‘관심사가 이것저것 다양해서 뭘 했는데요?’ 되묻는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무례한 면접관의 태도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곡을 찔렸다는 기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물론 지금껏 해 온 일을 모두 나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면접관이 원하는 답변은 이것이 아닐뿐더러 나는 세상이 원하는 인재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장을 나올 때 들었던 비참한 마음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치지레이지 역시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결심으로 시작했다. 비건 샌드위치는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욕심. 식당 운영하면서 글 쓰는 사장 중에 최고가 되겠다는 야망. 하지만 식당 사장이야말로 전천후 캐릭터가 되어야 하는 직업인지라 나는 지금도 천하제일 백공으로 살고 있다. (이제는 요리와 서비스 실력까지 곁들인…) 이런 스스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때가 된 것 같은데, 여전히 현실과 자아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드디어 백공의 시대가 왔다는 아빠의 말이 반가웠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려나.
점심 식사 후 삼촌은 다른 일터로 떠났고, 나와 강단은 가구 마감 작업을 하기 위해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그런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아빠는 우리의 곁을 맴돌다가 오전에 설치한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어 보고는 수압이 약하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늘도 작업햄수과? 다른 게 아니고예, 우리집 수압이 약해가지고 물탱크 물을 직수로 바꾸잰 햄신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듯 들렸다. 통화를 끝낸 아빠에게 물으니, 평생 토목 일을 해 온 아빠가 25년간 함께 일한 상하수도 전문가인데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현장에 나온다고 했다. ‘제주도 상하수도는 이 사람이 거의 다했다고 봐도 되지.’ 제주도 물길이 사장님 손바닥 안에 있다며, 아빠는 이런 전문가를 알고 지내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평생 한길만 걸어 온 멋있는 전문가.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해결사.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순간 백공으로서 지내온 자존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는 잡념에 빠졌다. ‘백 가지를 잘 하면 뭐 하나,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데. 나는 결국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못하는 백공일 뿐이야.’ 이런 생각을 하다가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나는 전문가가 되려고 발버둥 치는 가여운 백공이구나.’ 평생을 반복해 온 고민이 이렇게 나를 다시 찾아오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