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까 말까’의 갈림길 위에서
<도전을 위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2편
소신의 도전 모음집
- 기꺼이 영어 바보 되기
대학교 4학년이었던 2016년. 학과 페이스북 그룹에 재밌는 프로젝트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온 친구들과 팀을 이뤄 3일 동안 간단한 게임을 완성하는 해커톤이었다. 두 학기 연이어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게임 개발에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던 내 마음에 쏙 드는 행사였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데, 나에게는 심한 영어 울렁증이 있었다. 딱 그 하나의 이유로 모집 마감 직전까지 고민을 거듭했다.
신청서를 보내고 나면 마음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걱정은 더 커져만 갔다. 영어를 못해서 놀림거리가 되는 악몽을 꿨고, 낮이 되면 학과 사무실에 전화해서 신청을 취소해야 하나 망설였다. '그냥 마음껏 바보가 돼보자. 뭐 어때! 어차피 삼일짜리 바보인데.' 이렇게 마음을 다독이다 보니 프로그램 시작일이 다가왔다.
모든 일정을 영어로 소화하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나는 친구들의 대화 중 절반은 알아듣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 한 말을 되물을 용기조차 내지 못한 순간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큰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영어도 잘 못하면서 왜 왔냐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 바보가 되는 게 생각보다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 대기업 2주 만에 퇴사하기
2017년의 여름, 취업 준비 기간을 지나 한 대기업 신사업 팀에 출근한 첫날. 팀의 분위기와 업무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억지로 출근을 반복하는 하루하루가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제야 몇 달 전 지원할지 말지 고민했던 다른 회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였지만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이라 지원조차 하지 않은 곳이었다.
회사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제라도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해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전화기 너머로 취업 소식을 듣고 기뻐하던 부모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내 대학 동기 중에 대기업, 언론사, 로스쿨, 행정고시, 대학원이 아닌 다른 진로를 선택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도 다시금 생각났다. '모두가 좋다는 길을 두고 나만 샛길로 빠지는 거 아냐? 열심히 준비해서 들어온 회사인데,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며칠 밤낮으로 고민한 끝에 나는 작은 회사에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은 내 커리어의 시작점이 되었다. 직원은 나까지 3명뿐이고, 회사의 앞날은 불확실하고, 연봉은 적었지만 나에게 꼭 맞는 선택을 직접 내렸다는 뿌듯함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도전 모음집을 만들며 알게 된 것
‘용기’라는 필터로 과거의 경험을 돌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려놓고 보니 지금껏 스스로를 소개할 때 나열해 온 경험이 아니라서 더 낯설다. 하지만 조금은 쭈굴하고 찌질해 보이는 내 도전 모음집이 어쩌면 이력서 보다 나를 더 잘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로 적은 두 가지 경험 말고도 여러 기억이 연이어 떠올랐다. 여기에 비춰 보면, 나는 1.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 2. 정해진 길 밖으로 벗어나는 것 3.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인 듯싶다.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이유로 '할까 말까'의 갈림길 위에 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땐 어떤 선택을 내려야 용기 있는 사람인 걸까? 무엇이 나에게 더 필요한 결정이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렸어도 상관없었을 것 같다. 24살의 내가 영어 울렁증 때문에 결국 프로그램 참여를 포기했다거나 25살의 내가 대기업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다녔다 해도, 용기를 쥐어짜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쓴 노력은 그대로일 테니까. 나를 변화시킨 것은 두려움과 용기 사이에서 내가 벌인 사투이지, 내가 내린 결정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러니 '할까 말까' 고민 끝에 그냥 가던 길을 마저 가기로 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심지어 용기를 낸 결과가 보잘것없거나 사회적 기준에서 큰 성취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두려움과 불안을 제대로 바라보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고민하는 사람은 이미 그 자체로 용감하다. 밖에서 봤을 때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거나 대단한 일이 아닐지라도,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직면하는 혼자만의 싸움 역시 나는 ‘도전’이라 부르고 싶다.
👀 여러분을 두렵고 불안하게 만든 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작은배 소신입니다. 이번 주 레터를 쓰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하나하나 곱씹다 보니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어요. '이때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지? 왜 이런 이유로 불안했을까? 만약 과거의 내가 다른 결정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결정의 방향과 상관없이 모든 순간을 치열하게 지나온 과거의 제가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도 잠시 시간을 들여 '도전과 용기'라는 필터로 짧은 이력서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요? 제가 그랬듯, 생각보다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지도 몰라요. 혹시 혼자만의 시간 여행을 하다가 알게 된 여러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있다면, 저희에게도 슬쩍 알려주세요.
⛴️ 작은배 이모저모
- '창작하는 아침' 온라인 모임에 함께할 동료를 모집합니다. 5월 한 달간 아침 6시마다 유튜브 라이브에서 만나 함께 창작하는 모임이에요. 혼자서는 만들기 어려운 꾸준한 창작 루틴, 함께 모여 뿌셔 보아요!
- 강소팟 19화 '(영어)에 대한 강단과 소신' 에피소드가 업로드됐습니다! 10년간 유학했던 강단, 12년간 공교육에 충실했던 소신. 둘 다 할말이 참 많더라고요. 영어 공교육, 영어 울렁증, AI와 영어의 미래까지 (영어)에 대해 다룰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다뤘습니다.
*강소팟은 애플 팟캐스트, 스포티파이,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