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가 되는 연습

<도전을 위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4편

초보가 되는 연습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초보자가 될 준비를 하며 살아가야 한다."

최근 몇 달간 겁나는 일이 많았다. 얼마 전 열었던 중고 책 행사 ‘다 읽은 책 정거장’에서 오랜만에 비건 샌드위치를 선보였는데, 모든 재료를 미리 준비해 뒀음에도 불구하고 행사 전날 밤잠을 설쳤다. 음식을 망칠 것 같다는 불안감, 오랜만에 본 손님들을 실망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니, 식당 문을 닫기 전까지 1년 반 동안 만들었던 샌드위치인데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도전이라기에도 뭣한 작은 행동 앞에서조차 생각이 많아지는 나란 사람. 새로운 변화와 도전 앞에서 갖은 걱정을 다 끌어안고 머리를 쥐어뜯는 성향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

좌우명이라는 게 오히려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일을 기억하기 위한 다짐이라는 말처럼, 이번 레터의 주제 역시 나에게 그랬다. <도전을 위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라는 질문을 떠올린 건 내가 도전 마스터라서가 아니라, 해본 적 없는 일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쪼그라드는 요즘의 나를 위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겪어본 적 없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의연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마음을 가볍게 먹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었다. 이런 내 눈에는 낯선 상황 속에서도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만이 용감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예전에 내가 했던 도전을 모아 봤을 때 모든 기억의 중심에는 항상 두려움에 벌벌 떨던 내가 있었다. 달리 말하면, 두려울 것을 알면서도 낯선 상황 속에 스스로를 던져 놓을 용기가 나에게 있었다.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해낸 일은 나에게 도전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난이도가 아무리 높고 성과가 크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매를 여러 번 맞아 봤다고 안 아픈 게 아닌 것처럼 도전을 위해 용기를 내는 일은 아무리 거듭해도 어렵다. 하지만 맞으면 아플 걸 알면서도 링 위에 서기로 결심하는 복서 같은 사람들이 있다. 새로운 변화가 마냥 즐겁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결국 낯선 발걸음을 내딛기로 결심하는 사람들. 마치 한 번도 두려움에 떨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내린 선택을 감당하는 법을 안다.

결국 진짜 용기란 낯선 상황에서 불안에 떨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아니라, 나에게 꼭 필요한 결정을 내릴 때 주저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그 결정이 나를 불안과 두려움에 몰아넣을 것을 안다고 해도 말이다. 직접 해 본 일보다 모르는 세계가 훨씬 훨씬 훨씬 많은 탓에 우리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겁 많은 초보자가 되고 만다. 그러니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초보자가 될 준비를 하며 살아가야 한다.

물론 나는 다가올 일들이 여전히 무섭다.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고, 누구도 내가 한 일을 발견하지 못한 채 잊힐까 두렵다. 나 같은 사람이 모든 일을 담담하게 해내고 싶다고 생각하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표류하다가 지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저 ‘하겠다고 마음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보려 한다. 아흔이 되어서도 처음 보는 과일을 보고 낯선 마음보다 호기심을 더 크게 느끼는, 집으로 가는 길에 늘 걷던 길 대신 가본 적 없는 경로를 선택할 줄 아는, 새로 나온 전자 기기 앞에서 잠깐 바보가 되는 것 정도는 감당할 줄 아는 그런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라도. 초보가 되겠다고 마음 먹는 연습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우리들의 도전과 용기를 위하여!

<도전을 위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4편이자 마지막 글을 보내드립니다. 이번 연재는 개인적으로 의미가 커요. 제가 가진 용기가 어떤 모양인지 알았고, 저를 용감하게 만들어 주는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고,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 필요한 다짐을 되새겼습니다. 언젠가 용기를 내야 할 순간이 오면, 이번에 쓴 글들을 다시 꺼내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이전에 용감한 아기 고양이로 소개해 드렸던 반반이는 저희 집에서 무럭무럭 잘 크고 있습니다. 6차선 도로를 포복으로 기어가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손님이 오면 죽은 듯이 숨어있는 겁보가 되긴 했지만... 오랜만에 반반이의 안부도 함께 전합니다.

소중한 연휴 즐겁게 보내시고요! 레터에 대한 피드백과 안부는 메일 답장 혹은 작은배 방명록으로 전해 주세요.💌

손님이 집에 와서 책상 아래 숨은 반반이에요. 많이 컸죠?

⛴️ 작은배 이모저모

  1. 강소팟 20화 가정의 달 특집 방송이 업로드됐습니다! 강단의 어머니이자 멋진 여성, 박영자 님을 모시고 대화를 나눴는데요. 교사, 기자, 정치인. 여성으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살아온 지난 35년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강소팟은 애플 팟캐스트스포티파이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2. '창작하는 아침' 온라인 모임이 시작됐습니다. 벌써 5일 차에 접어들었는데요. 아침 6시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으면 무척 피곤하지만, 함께하는 창작 동료들의 소식을 듣는 일이 요즘 제 낙입니다.
  3. 저와 강단은 전주에서 이번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도 보고, 쓰레기 만들지 않는 비건 장터 '불모지장' 구경도 다녀왔어요. 여러분도 소중한 사람들과 편안한 휴일 보내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