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시간이 쌓이면
이 일도 결국 해본 일이 될 것이다.
나의 첫 해외 여행지는 중국 상해였다. 21살. 뜨거운 여름, 혼자 덩그러니 중국 공항에 도착했다. 모든 것이 너무 커 보여서 겁부터 났다. 숙소를 제공하기로 한 친구가 말했던 8번 버스를 타야 했지만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었다. 해외여행에 대해 무지한 나머지 로밍이나 유심칩 따위는 전혀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아무나 붙잡고 영어로 길을 물었다. 하필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중국어를 떠올리며 ‘빠!’를 연신 외쳤다. 그분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에서 버스를 탔고, 한참 후 버스 밖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 이후로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상해 여행만큼 강렬한 기억은 없다. 혼자 떠난 첫 여행이었기 때문에 여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척 낯설었다. 모르는 언어 앞에서 무모해지고, 새로운 음식에 마음을 열어 보는 경험. 낯선 환경 속에 어색한 모습을 한 내가 있었다. 그런 나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것이 참 많았다. 10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상해에서의 시간은 나를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돌이켜보면 낯선 경험의 총합이 지금의 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제주를 떠나 서울로 처음 올라가던 날. 대강의실 강단에 서서 발표하느라 손을 떨던 날. 아기 고양이를 입양 받던 날. 고수를 처음 먹고 세제 맛이 난다고 생각했던 날. 친한 친구에게 작별을 고하던 날. 전세 대출을 위해 대출 창구에 앉아 상담받던 날. 대표와 처음으로 퇴사 면담을 하던 날. 여든 넘은 건물주 할머니에게 화가 나서 큰소리친 오늘까지. 낯선 상황에서 낯선 일을 하며 낯선 감정을 느꼈다. 이런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새로운 일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이 들 때 주문처럼 외우는 말이 있다. '이 일도 결국 해본 일이 될 것이다.' 비슷한 마음으로 요즘은 이사 갈 집을 직접 고치고 있다. 치지레이지를 준비할 때 반셀프 인테리어를 해보지 않았다면 결코 시작할 수 없었던 일이다. 작업자를 만나 미팅을 하고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상점을 돌아다니는 일이 지금의 나에겐 전혀 어렵지 않지만, 불과 1년 전의 나는 같은 일이 두려워 밤잠을 설쳤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성취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내가 머무는 작은 세계에 실금을 내겠다는 마음으로, 낯선 경험에 기꺼이 투신하며 살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