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가게 자리' 찾는 방법
작지만 오래가는 가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가게 자리를 찾기 위해 처음으로 부동산에 다녀왔다. 주방 한구석에서 레시피 개발만 하다가 매물을 보고 있자니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하는 들뜬 마음이 들었다.
식당 창업을 마음먹은 후 틈만 나면 상가 계약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곤 했다. ‘망하지 않으려면 상권분석을 해야 한다’, ‘목 좋은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런 말들이 자영업 선배들의 공통된 조언이었다.
하지만 직접 매물을 보다 보니 상권분석이나 유동인구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의 목표는 작지만 오래가는 가게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분명 다른 관점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CHEESYLAZY에게 잘 맞는 자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고민한 3가지 사항을 글로 정리해 보았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CHEESYLAZY가 찾고 있는 매물의 조건을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참고로 우리는 권리 계약이 없고, 사장인 우리가 직접 일하는 작은 음식점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마음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1. 손님과 분위기
가게 위치를 정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손님에게 어떤 경험을 주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았다. CHEESYLAZY의 단골손님은 어떤 분일까? 회사 점심시간에 가게를 찾는 사람일 수도,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 근처에서 간단하게 포장해가는 사람, 먼 길을 운전하더라도 주말에는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다.
CHEESYLAZY는 가끔 먹는 특별한 비건 음식이 아니라 언제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비건 끼니를 제공하고 싶다. 여행 중이나 주말에 한 번 가는 식당이 아니라 언제나 자리를 지키는 이웃 식당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관광지 대신 회사와 빌라가 모여있는 제주시 구도심을 중심으로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또한 차가 쌩쌩 달리는 복잡한 대로변보다는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골목길에 자리 잡고 싶다.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손님이라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선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가게의 주인인 우리가 이런 곳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것도 결정의 큰 이유가 되었다.
2. 목표 매출/이익
임대료 수준은 가게의 ‘비용 구조'와 관련이 크기 때문에 우선 CHEESYLAZY의 목표 매출을 계산했다. 이때 충분히 도전적이면서도 두 사람의 노동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정하기 위해 고민했다.
- 제품의 가격(객단가) X 하루 목표 판매량 X 한 달 영업일 = 월 목표 매출.
- CHEESYLAZY : 9,000원 X 40개 X 26일 = 9,360,000원.
이 결과에서 변동비용을 제외하여 1차 이익 금액을 계산했다. 변동 비용은 판매량에 따라 달라지는 비용으로, 음식을 많이 팔수록 늘어나는 원재료비, 세금, 카드 수수료를 포함한다. 우리는 원재료 38%, 그 외 변동비 비율을 12%로 잡았다.
1차 이익 금액이 ‘고정 비용'(임대료, 관리비, 공과금, 인건비, 4대 보험비, 감가상각비)보다 적으면 적자가 나고 넘으면 흑자가 난다. 목표 판매량을 높이거나 낮추면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임대료를 파악할 수 있었다.
- 월 목표 매출 - 변동비용 > 고정비용 (흑자)
- 월 목표 매출 - 변동비용 = 고정비용 (손익분기점)
- 월 목표 매출 - 변동비용 < 고정비용 (적자)
만약 적자가 나더라도 버틸 수 있을지 함께 고려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텨야 지속 가능한 가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CHEESYLAZY : 월 임대료가 700,000원이라면 하루에 10개를 팔았을 때 비용을 감당할 수 있고, 하루40개를 팔았을 때 우리가 원하는 이익 금액을 벌 수 있다.
3. 주방기구 목록
비용구조를 구체화할 때 ‘하루 목표 판매량'은 정말 중요하다. 판매량에 따라 주방 규모가 달라지고, 특히 작은 가게는 주방을 중심으로 가게 구조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하는 이익 금액을 달성하기 위해서 목표 판매량을 높게 잡았는데, 주방이 턱없이 작거나 홀에 좌석이 부족하다면 낭패다. 우리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자 했다.
이렇게 목표 판매량을 정한 후, 판매량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의 주방기구(오븐, 간택기, 냉장냉동고, 작업대 등) 리스트를 작성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필요한 주방기구가 모두 들어갈 수 있는 주방이 얼마나 클지 가늠하고, 전기/수도/가스 공사의 규모를 함께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기반 공사는 인테리어 비용과 직결되기 때문에 매물을 보러 가기 전 꼭 정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구상한 메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주방기구 파악이 우선이다. 우리는 여러 레시피와 조리방법을 이미 연습해왔기 때문에 목록을 작성하는 과정이 훨씬 수월했다.
이제 시간을 들여 최대한 많은 매물을 보고 비교하는 일만 남았다. 다 좋은데 한두 부분이 아쉬운 매물만 계속 보다 보니 CHEESYLAZY에게 딱 맞는 자리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 운명의 자리를 만난다면 놓치지 않고 한눈에 알아볼 안목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고민하며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