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
목구멍에 가시가 박혔다. 며칠 전 저녁으로 먹었던 고등어 가시인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넘어가겠지 싶어 그냥 두었다. 그래도 안넘어가길래 밥을 꿀떡 삼켜도 봤다. 가시는 끄떡 없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가시가 느껴졌다. 티비를 볼 때도, 일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가시가 신경쓰였다. 목에 박힌 가시를 신경쓰다보니 걸리적거리는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나는 어렸을 때 걔가 정말 싫었다. 나의 이모, 그러니까 걔네 엄마가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나는 방학마다 걔네 집에 보내졌다. 다음 학기 선행학습을 위해서였다. 걔네 집에서 지내는 동안 걔는 나를 자주 괴롭혔다. 어른들 몰래 발을 밟고, 꼬집고, 밀고, 내가 들어가야 할 문을 일부러 막고 서 있었다. 걔랑 나는 동갑이라 늘 같은 문제집을 풀었다. 걔보다 내 점수가 더 높게 나온 날이면, 그날은 어김없이 발을 밟혔다. 걔는 머리가 나빴는지 대체로 내가 문제를 더 잘 풀었고, 그래서 나는 자주 발을 밟혔다. 걔가 나를 괴롭히는 걸 엄마나 이모에게 말하면 별 일 아닌 듯이 걔가 나를 좋아해서 그런거랬다. 좋아하는데 왜 나를 꼬집어? 왜 나를 밀어? 라고 물어보지도 못할 정도로 미련하게 가만히 있는 애였던 나는 하지 말라는 말도 못하고 그냥 참았다.
걔는 이모가 늦게 얻은 외동아들이었다. 우리 집에는 동생도 둘이나 있고 컴퓨터도 후졌는데, 걔 방에는 최신형 컴퓨터와, 전자사전, mp3가 다 있었다. 엄마가 안 사주던 힐리스도 걔한텐 있었고, 침대도 2층 침대가 아닌 1층 침대였다. 그 모든 걸 혼자 쓰는 게 부러워서 더 싫었다. 나는 여권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걔는 영국에서 잠깐 살다 오더니 자꾸 영어를 쓰는 것도 재수 없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걔네 아빠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 후, 걔는 친척들 사이에서 가여움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그게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아빠가 없는 게 그렇게 불쌍한가? 내 눈에는 걔한테 아빠가 없다는 것 말고는 부족한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중학생이나 돼서 친구 생일파티에 여섯 살짜리 막내 동생을 데려가야 하는 내가 더 불쌍했다.
이모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우리 가족은 걔네 집에 더 자주 갔다. 열여섯 살 걔 생일날이었다. 엄마와 나와 동생들은 걔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기차를 타고 걔네 집으로 갔다. 뷔페에서 이모가 사준 저녁을 먹고, 집에 가서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케이크를 먹고 OCN에서 하던 영화를 보다가 잠에 들었다. 걔는 자기 방에서, 나머지 가족들은 거실에 펴놓은 이불에서, 나는 거실 소파에서 잤다. 자다가 왠지 모를 인기척에 살짝 눈을 떴다. 내 팬티 안에 걔 손이 있었다. 놀란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꿈인가 싶어 몸을 돌리니 이번엔 걔가 놀란 듯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돌아누운 채로 눈을 꾹 감고 이게 무슨 일일까 생각했다. 몇 분 뒤, 걔 방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히 내 쪽으로 다가와 이번엔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번엔 잠에서 깬 척 하며 다시 몸을 움직였다. 걔는 또다시 빠르게 방으로 가버렸다. 고요한 거실에 내 심장소리만 들렸다. 나는 걔가 다시 나와서 나를 만질까 봐 잠에 들지 않으려 일부러 몸을 뒤척였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른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부엌에서는 엄마와 이모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수다 떠는 소리가 들렸고, 동생들은 눈 뜨자마자 티비를 보고 있었다. 이모가 밥먹으라고 소리치자 걔도 졸린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우리는 거실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나는 엄마와 이모에게 어젯밤에 쟤가 나를 만졌다고 이르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그러지 않았다. 그 날 아침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걔네 집에서 자야 할 일이 있을 때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긴 했으나,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걔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건 오 년쯤 뒤, 첫 섹스를 경험하고 나서였다. 걔가 나에게 하려던 일이 정확히 뭐였는지,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처음에는 후회했다.
왜 그 때 바로 말하지 않았을까. 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왜 돌아 눕기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까. 하지 말라고 왜 말하지 않았을까.
다음에는 어른들을 원망했다.
엄마는 왜 걔를 불쌍하게 생각할까. 나는 왜 이모를 좋아할까. 이모가 이 사실을 알고도 걔 편을 들면 어쩌지. 엄마랑 이모는 왜 친할까. 아빠는 왜 이모한테 돈을 빌려서 내가 고민하게 만들까. 친척들이 내 말을 믿을까. 왜 이제 와서 그러냐고 오히려 나를 나무라지는 않을까.
걔를 이해해보려는 노력도 있었다.
혈기 왕성한 사춘기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조심성 없이 있던건 아닐까. 사실 걔가 한 건 나를 만진 것 밖에 없는데 너무 과민한건 아닐까.
그러다 이해하기를 실패하고 저주를 퍼붓는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아니, 죽지도 않고 인간구실 못하면서 한심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모가 걔를 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걔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만 이렇게 괴롭다는 걸 생각하면 숨이 막힐 것 같이 화가 난다. 결국 화살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고, 나는 브래지어를 벗고 잠에 든 열여섯의 나를 탓한다.
며칠을 참다가 안되겠다 싶어 입을 아아아 벌려 거울을 봤다. 정말로 목구멍에 가시가 박혀있었다. 핀셋을 가져와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가시가 잡힐랑 말랑 잡힐랑 말랑. 토할것 같은 기분을 참고 목구멍을 헤집었다. 그러다 쑥 뽑혔다. 생각보다 길고 두꺼운 가시였다. 시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쯤 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걔」
- 발행일 2026년 3월 5일
- 작은배가 진행하는 <일상묘사 : 수필 합평 모임>에서 탄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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