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반」, 고구말랭이

「소반」, 고구말랭이

내 부모가 갈라서면서, 네 살 무렵의 나는 난데없이 서울을 떠나 전라도 외할머니의 집에 맡겨졌다.

또래 아이들보다 유난히 작고 마른 체구를 가졌던 나 때문에 할머니의 근심은 좀처럼 가실 날이 없었다. 비쩍 골은 몸뚱아리는 피골이 상접하기 일보 직전이었고, 허옇게 뜬 피부에 눈 밑엔 시퍼러둥둥한 고랑이 파여 있는 모냥새가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꼴이었달까. 무슨 이유인지 내겐 하루 세 번 밥상머리에 앉는 일이 고문과도 같아서, 끼니 때마다 “밥 먹자.”는 할머니의 말이 떨어지면 방 한켠에 똬리를 틀고 앉아 눈물만 뚝뚝 흘리기 일쑤였다. 할머니는 얼마고 나와 씨름을 하며 밥 한술이라도 떠 먹이려 애를 썼으나, 벽창호 같은 내 고집 앞에선 번번이 두 손 두 발을 들고야 말았다.

할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았다. 하지만 내겐 음식 맛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먹는 것 자체가 징그럽게 싫었다. 요즘 같은 시대야 의사며 박사며 텔레비전에 나와, 우리 금쪽이가 식사를 힘들어하시는 이유를 알려주기도 한다지만, 그 시절 어르신들은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대신에 내 할머니는 한의원에 가서 살 찌우는 보약을 지어 오거나,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 부적을 받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밥도 잘 안 먹는 것이 쓰디쓴 약을 입에 갖다 댈 리 만무했고, 누런 종이에 갈겨 쓴 미신 또한 별반 효험을 보이지 않았다.

어린 내 머리맡엔 늘 소반이 놓였다. 언제든 내키면 떠먹으라며 할머니가 작은 밥상을 차려 내 방 머리맡까지 가져다 두었던 것이다. 말간 옥색 그릇에 담긴 흰죽과 맛간장, 시원한 동치미가 소반 위의 단골이었다. 몇 술이라도 밥을 뜨는 날이면, 할머니는 “이쁘다. 잘했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속없는 나는 내가 밥을 먹는 것이 특별히 이쁜 짓인 줄, 벼슬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자주 시내에 나갔다. 내 손을 붙잡고 고깃간이며 생선 집, 채소 가게 등을 돌아다니면서 내게 무슨 반찬을 먹고 싶으냐고 지겹게 물어댔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만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그나마 달짝지근한 것은 잘 먹는 편이라, 제과점에 들러 노르스름한 센베이를 손에 쥐여 주면, 하루 종일 고것 하나를 붙잡고 작은 앞니로 조금씩 갉아 먹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유난스런 내 밥투정은 달라지지 않았고, 내게 학교 배식 시간은 늘 곤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허연 가운을 걸친 영양사 선생이 퇴식구 앞을 장승처럼 지키고 서서는, 밥을 남긴 아이들을 붙잡아 억지로 잔반을 먹이곤 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나는 엉뚱한 재주 하나를 익혔는데, 음식을 입안에 감쪽같이 숨기는 일이었다. 퇴식구로 향하기 전, 남은 밥이며 반찬을 입안 깊숙이 밀어 넣고, 목구멍을 단단히 잠가 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요령이었다. 음식을 최대한 입 안쪽에 보관해 볼이 불거지지 않게 한 뒤 퇴식구를 무사히 넘어서면, 나는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입안에 넣어 두었던 것을 모조리 뱉어 버렸다.

밥심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내 몸은 허약하기 짝이 없어서, 운동회나 소풍 따위로 부산을 떨고 나면 이튿날은 반드시 몸져누워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한 번은 제대로 탈이 났다. 조회 시간,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던 중 내가 졸도해 응급차에 실려 간 것이다. 의사는 내 몸에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종국엔 영양실조라는 진단을 내렸고, 얼굴이 파랗게 질려 병원으로 쫓아온 할머니는 “궁춘에 보릿고개 넘길 적도 아닌데 영양실조가 웬 말이냐.”며 혀를 내둘렀다. 며칠 병원 신세를 지고 집에 돌아가니, 기다렸다는 듯 내 머리맡에 소반이 놓였다. 여전히 밥상을 앞에 두고 고사를 지내는 내게 할머니는 전과 달리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이번엔 도무지 고집이 통할 것 같지 않자 나는 들입다 방바닥에 엎어져 팔다리를 휘졌다가, 그만 소반을 걷어차고 말았다. 조그만 상 위에 놓였던 간장 종지가 엎질러졌고,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상을 들고 나가더니 부엌에다 내동댕이를 쳤다. 와장창 깨지는 소리에 난 이제 죽은 목숨이다 싶었지만, 어쩐 일인지 할머니는 조용했다.

이튿 날, 오랜만에 등교를 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조회가 열렸으나, 나는 열외되어 나무 그늘 한켠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나더러 운동장에서 쓰러졌던 애라며 수군대는 것 같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인 것은 아침까지도 별말이 없던 할머니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할머니에게 미안하다고 말할지 이제부턴 밥을 잘 먹겠다고 맹세라도 해야 할지 궁리했다. 주뼛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서자, 할머니는 이미 나갈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아침에 생클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내 손을 붙잡고 시내로 향했다.
어느 그릇 가게 앞에 이르러서야 할머니와 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가게 안에는 반짝이는 사기와 옻그릇, 제기 같은 것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작은 나무 상 하나를 골랐다. 나뭇결이 곱고 반지르르하게 윤이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앞세워 진열장을 가리키고는 마음에 드는 그릇을 골라 보라고 했다. 나는 이것저것 들었다 내려놓고 만지작거리다가, 개고락지가 그려진 사기그릇 하나를 집었다. 가장자리에 보라색 포도알이 둘러진 것이었다. 내가 고른 밥공기를 받아 든 할머니는 밥을 잘 먹어야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했다. 또 튼튼하게 자라서 늙은 할머니를 돌봐줘야 하지 않겠느냐고도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할머니의 주름이 유난히 더 깊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나는 할머니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었다. 복사하고 코팅까지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새 밥공기와 과자부스러기를 가지고 소꿉놀이를 했다. 부엌에서는 지글지글 기름 볶는 냄새가 났다.


「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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