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기 자랑」, 하림
최근에 엄마랑 마주 앉아 밥을 먹다 말고 뜬금없이 숨 쉬는 걸 자랑했다.
"엄마, 이거 봐봐."
나는 갈비뼈 사이사이에 손가락이 얹어지도록 양 손바닥으로 갈비뼈를 감쌌다. 목구멍을 조이며 코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가 좁은 목구멍을 지나는 소리가 났다. 공기를 명치 부분에 이르기까지 보낸다는 생각으로 길게 숨을 몸에 불어넣었다.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 천천히 흉곽이 몸 바깥 방향으로 넓어지며 갈비뼈가 내 손바닥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잠시 멈추었다. 이번엔 흉곽을 넓힌 공기를 다시 내 몸의 중심으로, 배꼽 쪽으로 끌어모으듯 갈비뼈 사이사이를 좁혔다. 흉곽이 쪼그라들면서 밀려 올라온 공기가 목구멍을 지나며, 다시 한번 공기의 흐름이 소리로 드러났다. 스으으으-. 해변에서 소라 껍데기를 주워 귀에 갖다 댈 때 들리는 바닷소리가 내 몸에서 흘러나왔다. 몸이 하나의 큰 소라 껍데기가 된 것처럼, 바닷소리가 잔잔하고도 선명하게 울렸다.
"우와. 몸에서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 엄마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안경 닦을 때 안경알에 하아- 입김 불잖아. 그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 입을 다물면 돼." 나는 시범을 보였다. "그러면 입이 아니라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면서 코로 숨을 내쉴 수 있어."
"하아—(읍)" 엄마가 따라 해 보지만 입을 다무는 동시에 공기가 입안에 갇혀 숨이 끊겼다.
"이렇게 숨 쉬면 뭐가 좋아?" 여러 번 시도해 보던 엄마가 물었다.
"공기가 조금씩 들어오고 나가니까 숨이 길-어지고 깊어져. 우리 긴장될 때 심호흡하면 몸이 이완된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렇게 호흡하면서 요가 동작을 하면 굳어있던 몸이 더 잘 풀리는 느낌이야. 호흡에 집중하면서 움직이니까 어느 근육을 쓰고 있는지 잘 느껴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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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요가원 '요가홈'에서 수개월에 걸쳐 이 호흡을 몸에 익히게 되었다. 요가홈은 내가 강원도에서 일하던 시기에 다녔던 속초의 요가원이다. 24년 가을, 요가홈에 처음으로 찾아가 수련한 날에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어둑한 가운데 라탄으로 만들어진 전등에서 전구색 빛만 은은하게 나오고 있었다. 팔을 양옆으로 나란히 뻗으면 옆사람과 손이 닿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두고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아쉬탕가 수련을 했다. 점차 후끈하게 열이 올랐다. 각자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가 방 안의 공기를 서서히 덥히는 듯했다. 파도의 흐름이 보이는 듯한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파도가 모래사장 위로 부드럽게 밀려들었다가, 잠시 머물고는, 다시 밀려나가며 서서히 멀어지는 소리. 기나긴 숨소리가 흔들림 없이 고르고 크게 들려서 선생님이 호흡을 안내하는 녹음을 스피커로 틀어놓은 줄 알았다. 요가 동작을 하는 중에도 들숨과 날숨이 이루는 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나를 둘러싼 숨소리의 속도에 맞춰 호흡을 가다듬으려 노력했지만 내 숨은 턱도 없이 짧았다. 숨을 길게 늘어뜨리려 해 봐도 고작 입천장 안쪽까지만 얕게 공기가 들락날락하는 느낌이었다. 파도가 밀려들어오는 시간의 절반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내가 들이마시는 숨은 이미 끊겼다. 파도가 모래 위에서 흩어지기까지 배에 힘을 주어 숨을 참고 있다가, 파도가 채 밀려나가기도 전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숨을 거칠게 내뱉고는 했다. 내 숨은 파도에 올라탈 수 없었다.
그러다가 동작을 유지하는 것이 힘에 부쳐 내 숨이 더 얕아지고 빨라질 때쯤, 파도에서 벗어나는 다른 숨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고르지 않은 숨소리가 내 오른쪽에서, 뒤쪽에서 하나둘 들렸다. 그때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녹음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가 모여 하나가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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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홈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내 몸은 매일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출근해서는 가만히 물 마실 틈도 내지 않고 매 순간을 꽉 채워서 일하고 있었다. 야생동물 수의사로서 나는 어떤 업무도 지체할 수가 없다고 느꼈다. 내가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이느냐에 따라 돌보는 동물들의 하루하루가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 환자가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시기적절하게 판단하여 방사하는 것처럼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많았다. 동물이 통증을 느낀다는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면 그가 남몰래 고통스러워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었고, 치료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야생동물이 인위적인 환경에 오래 머물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돌이킬 수 없이 커질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를 탓하며 후회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럴 때에 '충분히 치열하게 고민했잖아. 최선이었던 거야.'라고 나를 다독이기 위해서라도, 시시각각 머리와 몸을 있는 힘껏 굴렸다. 이런 부담감을 함께 나누며 의지할만한 동료가 없다는 것도 나를 곤두서게 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일해야 하는 선임 수의사와 안 맞는 부분이 많아 어떻게든 맞춰가 보고자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몸이 이대로는 못 살겠다 아우성을 치며 이완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요가원을 찾아간 것은 필연적이었다. 숨 쉬는 법을 배워야 했다. 실제로 내 숨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내 숨을 어찌할 줄 몰라 당혹스러웠던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날 아침에 일어나자 눈의 수분이 모조리 메마른 것처럼 뻑뻑했다. 밤에 잠을 설쳐서 눈이 평소보다 더 건조한가 생각하고는 피로감을 느끼며 센터에 출근했다. 당일에 같은 팀에선 유일하게 같이 근무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재활관리사로부터 병가를 써야겠다는 연락이 왔다. 재활관리사와 수의사로 구성된 '수의팀' 인원은 한 손안에 들 정도로 수가 적었다. 센터장이 '동물 밥 주고 똥 치우는 데 사람이 뭐 그리 필요하냐'는 식으로 수의팀의 수고를 인정하지 않았던 영향이 컸다. 게다가 안 그래도 빠듯한 수의팀의 인력 일부를 다른 팀으로 빼가서 남은 이들의 업무 부담이 더욱 커져 있는 상황이었다. 아침 회의가 끝난 뒤, 센터 안에서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센터장 눈을 쳐다보고 따박따박 말했다. 수의팀 무리되는 상황이라고, 다들 쉴 새 없이 일하면서 몸은 몸대로 상하고 있다고. 나도 화가 나면 이렇게 준비 없이 쏟아낼 수도 있는 사람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평소 화가 잘 나지도 않을뿐더러, 상대로 인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야 할 상황에는 미리 할 말을 정리해서 차근차근 말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몸이 상하고 있다는 그 말을 바로 증명이라도 하듯,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상태에 다다랐다. 직원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휴게실에 있을 때였다. 심장박동이 몸 여기저기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관자놀이에 손을 얹지 않았는데도 혈관이 퉁, 퉁, 퉁 빠르게 튕기는 게 느껴졌다. 일주일 전부터 양쪽 관자놀이가 조여 오는 느낌이 자주 들고는 했는데, 그 부위가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왼 손목에 두른 시계의 초침을 보며 심박수를 셌다. 평소에도 마취 중인 동물의 심장이 잘 뛰고 있는지 확인할 일이 자주 있기에,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그런 행동이 저절로 나왔다. 두려움에 휘감기지 않도록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애썼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분에 백번 정도 심장이 쿵쿵댔다. 평소 내 심박수가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얼마나 빨라진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봐도 몸이 진정되지 않았다. 호흡까지 덩달아 가빠졌다. 숨이 차올랐다. 가만히 있는데도 숨이 가라앉지 않았다. 내 몸에 큰 문제가 있는 걸까 봐 무서웠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센터장에게 조퇴한다고 말하려 일어섰다. 눈앞이 어른어른했다. 화장실에 가서 찬물을 양손에 받아 얼굴에 몇 번이고 끼얹었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센터장실에 갔다.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서서 말하는 중에도 계속 주저앉을 것 같아 힘겨웠던 느낌만 기억난다.
그리고는 휴게실에서 좀 누워있었던가. 얼마쯤 지났는지 맥박이 날뛰는 느낌이 사그라들었다. 그날 수의팀의 유일한 근무자인 나를 대신해, 다른 팀의 직원 한 명, 그리고 일주일 전부터 함께 하던 수의대생 봉사자가 수의팀의 오후 업무를 맡아주기로 했다. 그들이 큰 어려움 없이 동물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구체적으로 안내를 했다. 하지만 무작정 맡길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당시 입원해 있던 왜가리가 약이 묻은 먹이를 도통 먹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안정적으로 왜가리를 잡은 채로 입 안 깊숙이 먹이를 밀어 넣어 약을 먹게 해야 했다. 미숙하게 진행하면 왜가리와 사람 모두에게 위협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그 일까지 해결한 후에야 센터를 나설 수 있었다.
속초의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그즈음 느낀 몸의 변화를 하나씩 적어보았다. 나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증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등 진단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메모하고는 한다. 이 습관은 동물병원에서 보호자에게 문진한 내용을 기록하는 훈련을 하면서부터 생겼다. 3-4개월 전부터 곤혹스러울 정도로 설사를 자주 했고, 눈이 건조해서 수시로 안약을 넣어야 했다. 한 달에 두세 번씩 몸이 무겁고 곳곳의 근육이 뻐근했다. 근무날에 몸살 기운이 오면 출근하면서 편의점에서 타이레놀을 사다가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었고, 쉬는 날이면 꼼짝없이 누워서 팟캐스트를 듣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생리주기가 아닐 때에도 예측할 수 없는 출혈이 잦고, 그때마다 생리통처럼 아랫배가 아릿한 통증이 심했다. 끼니를 잘 챙겨 먹고 있음에도 3개월 사이에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찾아본 바로는 갑상샘기능항진증의 증상과 겹치는 것이 많았다. 이미 그 질병을 진단받은 사람처럼 치료하는 약의 부작용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평생 먹어야 하는지를 알아보았다. 갑상선 호르몬 검사를 비롯해 의심할 수 있을만한 것들에 대해 여러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내 앞의 의사는 심장도, 호흡기도, 갑상샘호르몬 수치에도 걱정할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큰 질병이 아니어서 다행인 마음과 동시에, 내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던 불편함이 제 이름을 얻지 못하고 해결책을 찾지 못해 답답하기도 했다. 검사 결과는 내가 토로하는 불편함이 마치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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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장기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스트레스가 이렇게 몸을 들쑤실 수 있는 거라면, 어떻게든 신체와 정신에 부담을 줄여 몸을 달래야 했다. 할 수 있는 한 내 건강을 되찾으려 노력을 해보아도 다시 숨이 벅차오르는 상황이 찾아오면 그때엔 더 이상 버티지 말고 떠나자고 다짐했다.
부지런히 요가를 다니면서 숨 쉬기를 연습했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애써 숨을 참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그 상태에 머무르면 된다는 것을 몸으로 익혔다. 내쉬는 숨의 길이가 차차 길어졌다. 끝까지 숨을 비워내는 감각을 알게 되었다. 두 달쯤 지나자 소리를 내면서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가능해졌다.
어느 날에는 요가홈에서 수련을 마치고 나오는데, 선생님께서 내 자세가 굽어있다며 몸이 긴장해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걸 중간중간 인지해보고 어깨를 돌리거나 으쓱해 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내 혼자 감당해오고 있던, 나를 무겁게 하던 부담감을 누군가 알아준다는 것 자체가 내 감정을 건드렸던 걸까. 누가 "많이 힘들지?" 물어보면 왈칵 눈물이 쏟아져버릴 것 같은 상태였던 것 같다. 정말 다행인 것은, 긴장한 몸의 자세가 굳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직 유연함을 잃지 않았다. 내가 원하면 이완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업무를 하는 중에 틈틈이 내 몸에 긴장을 풀어도 된다는 신호를 주었다. 일에 집중하다가도 부러 의식해서 중간에 숨 쉴 틈을 가졌다. 따듯한 차를 후- 불면서 내 눈가에 올라오는 촉촉한 온기를 느끼며 나를 진정시켰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양쪽 어깨를 귀에 닿을 듯 들어 올렸다가, 숨을 내쉬면서 뒤쪽의 날개뼈 사이를 좁히며 아래로 끌어내렸다. 점심시간에 잠시라도 나가 파란 하늘과 색색의 단풍을 보며 걷고, 콧구멍만으로는 아쉬워 입구멍까지 크게 벌려 가을 공기를 흠뻑 빨아들였다.
이런 노력들이 효과를 보이며 상태가 조금 나아지나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직장에서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갖가지 문제에 초연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던 균형이 깨지면서, 몸이 다시 고장 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의 예민한 몸을 원망하기도 했다. 다른 일을 하더라도 몸이 버티기 어려우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불안도 자주 찾아왔다. 그것에 압도되어 무겁게 가라앉기 전에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퇴사를 한 다음날부터 그토록 나를 괴롭혔던 많은 증상들이 저절로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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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있는 본가로 돌아와 지내면서 동네에 있는 요가원에 다니고 있다. 요가홈처럼 호흡을 하나로 맞추기보다는, 각자 알아서 호흡을 하며 수련을 따라오도록 하는 분위기다. 내 몸에 익은 방법으로 천천히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내 호흡에 맞추어 움직이고는 한다. 선생님의 안내보다 조금 늦게 동작을 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으려 한다. 내 들숨과 날숨이 움직임과 함께 흐르면서 몸 구석구석이 깨어나는 감각을 느낀다. 속초에서 숨을 몸 깊숙이 불어넣으며 경직된 몸을 살피던 시간이 지금껏 내 몸을 감각하는 데에 계속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 내심 뿌듯하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숨을 잘 쉰다는 거 꽤 멋진 일 아니냐고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숨에 맞게 움직이면서 살고 싶다. 숨의 안내에 따라 몸의 말을 잘 들으며 살고 싶다. 숨을 잘 쉬면서 살고 싶다.
「숨쉬기 자랑」
- 발행일 2026년 3월 5일
- 글쓴이 하림 brunch.co.kr/@variouslives
- 작은배가 진행하는 <일상묘사 : 수필 합평 모임>에서 탄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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