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도, 쓴맛도」, 금비

「매운맛도, 쓴맛도」, 금비

별 호들갑을 떨면서 불닭볶음면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불닭볶음면이 출시된 2012년, 난 고1이었다. 불닭볶음면은 처음 나올 때부터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친구들 사이에선 그 매운 불닭볶음면을 먹어보는 게 유행이었고 나 역시 친구와 함께 불닭볶음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우리는 처음 사보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몇 분 기다렸다가 싱크대에 물을 버리고 매운 소스를 짜고 면을 섞었다. 빨갛게 물드는 면에서 매운 향이 훅 올라왔다. 우리는 라면이 얼마나 매울까 기대하고, 너무 매우면 어떡할지 걱정하고, 유행하는 음식을 드디어 먹어본다는 설렘을 안고 후루룩 불닭볶음면의 첫입을 떴다. 켁. 열나게 매웠다. 물! 물이 필요했다.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셔서 이 매운맛을 씻어버리려고 해도 입안은 화끈거렸다. 인중까지 얼얼했다. 저절로 콧물이 나와서 코를 자꾸만 먹었다. 혓바닥이 아파서 혀를 쑥 내놓고 침이 마르도록 말렸다. 눈물 콧물 쏙 빠지게 불닭볶음면을 경험하고서도 우리는 그 고통스러운 짓을 반복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불닭볶음면을 더 자주 먹었다. 스읍하, 스읍하. 심호흡하면서 불닭 한 컵을 비워냈다. 불닭볶음면을 더 맛있게 먹는 여러 방법을 따라 해가며 먹었다. 치즈를 곁들여서, 전자레인지에 몇 초를 돌리고, 참치 삼각김밥이랑 팍팍 섞어 먹기도 하고, 짜파게티나 스파게티에 합체해서 먹기도 했다. 매워도 자꾸만 먹고 싶은 맛에 꾹 참고 계속 먹다 보니 그렇게 맵던 불닭볶음면이 어느 순간 그다지 맵지 않았다. 이제는 소스를 덜 맵게 만드는 건가, 내가 매운맛에 내성이 생긴 건가. 지금은 불닭볶음면을 유난 떨지 않고 침착하게 먹을 수 있다. 맛을 음미하면서 말이다.

이런 건 비단 불닭만이 아니다 술도 그렇다. 처음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셔본 날은 모든 게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대학 입시가 끝나고 미술학원 친구들과 세계맥주 무한리필집에 갔다. 우리는 당당하게 술을 마셔보자는 당찬 결의와는 다르게 막상 술집에 들어가니 머쓱해졌다. 뭐라고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술들이 한가득이었다. 엉거주춤 맥주잔에 술을 따르고 한 모금 홀짝여보면서 이렇게 마시는 게 맞나, 맥주 맛이 이게 맞는 건가, 원래 술은 이렇게 맛없고 쓴 건가 싶어서 알쏭달쏭했다. 그러고 1년도 안 돼서 우리는 술 마시는 데 아주 익숙해져 버렸다. 쭈뼛쭈뼛 술을 주문하던 애들이, 추가 주문을 할 때마다 다 마신 술병을 들어 올리며 손가락으로 몇 병 더 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능숙한 애들이 됐다. 우리 입맛이 바뀐 건지 술이 달라진 건지. 낯설고 쓰기만 했던 술이 어느새 시원하고 개운한 맛으로 변해있었다.

인생 첫술을 같이 마셨던 친구들과 다닌 입시 미술학원은 열아홉 인생에서 가장 눈물 나게 맵고 속 쓰린 경험을 한 곳이었다. 우리 학원은 창조의 아침, 영원한 미소 같은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에 있는 작은 미술학원이었다. 선생님은 ‘그림은 너 자신이다’라고 가르치고선, 그림이 마음에 안 들면 그 자리에서 박박 찢어버렸다. 선생님 입에서는 내가 아는 욕, 모르는 욕이 술술 쏟아져 나왔고, 8층이었던 학원에선 선생님이 손수 창문을 열어주며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친히 안내해 주기까지 했다. 내 그림이 선생님 마음에 안 들면 나는 한순간에 배신자가 돼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기 일쑤였고, 너 때문에 우리 학원 수준이 떨어진다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매일 이런 식으로 욕을 먹었다. 그럴 때마다 바닷물이 코로 잘못 들어간 것처럼 찡하게 아팠다. 눈물이 나올 것 같지만 선생님 앞에서 울 수 없었다. 울면 더 욕먹을 거 같았다. 나와 학원 동기들은 매일 학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물을 줄줄줄 흘리며 걸어갔다. 그때 나는 상처 난 마음을 그대로 두기는 싫어서 이 짓 저 짓을 해봤다. 편의점에서 홍석천의 홍라면을 사 먹으며 꼬릿한 매운맛으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내 취향에 맞는 노래를 찾아 들으며 혼자 마음을 달랬다.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슈퍼에 들러 학원에서 그렸던 정물을 사다가 다시 그려보기도 하고, 집에 가서는 매일 짧게라도 무언가를 적었다.

학원에서 하도 욕을 배부르게 먹고 그 상처를 아물게 하려고 애를 쓴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나중에는 그 누가 뭐라 해도 큰 타격으로 느끼지 않았다. 대학교수님이 쓴소리하면 다른 학원 출신 애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 학원 출신 애들은 그저 무덤덤했다. 사회에 나와 텃세를 부리는 사람을 만나도 기죽지는 않았다. 미술학원에서 무슨 소리를 듣고 어떤 눈빛을 견뎌왔는데. 그 정도는 별거 아니었다. 첫 회사에 다니면서 대표한테 개소리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맷집이 생긴 건지, 대표가 소리를 지르면 나도 맞대응을 할 수 있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하나 알 수 있던 건 출근 전 거울을 보면 내 눈이 동태눈깔이었다는 것이다. 내 눈동자는 아무리 봐도 생생한 눈알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물집이 터졌다 아물기를 반복하면서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버린 것만 같았다. 자질구레한 것들에 상처를 덜 받게 된 건 좋았지만, 시시한 것에도 웃을 수 있고 놀랄 수 있었던 때가 그리웠다. 그땐 마음이 연하고 말랑했던 것 같은데.

매운맛도 쓴맛도 영원히 맵거나 쓰지만은 않을 거다. 혓바닥을 말려가며 불닭볶음면을 먹던 열일곱 살이 아무렇지 않게 빨간 면발을 넘기는 삼십 살이 됐다. 학원 끝나고 집 가는 길에 눈물 뚝뚝 흘리던 애가 소리 지르는 회사 대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사과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점점 익숙해지는 게 많다. 그만큼 무뎌지는 것도 많다. 예전엔 신기하고 설렜던 것들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긴장되고 무서웠던 것들이 지금은 별 게 아니기도 하다. 매운맛에 무뎌지고, 쓴맛에 무뎌지고. 내 입맛은 또 변할 것이다.


「매운맛도, 쓴맛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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