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간에 살았던 우리가」, 지영

아니 조금만 일찍 나왔으면 안 늦었을 거 아니야. 도대체 왜 맨날 5분, 10분씩 늦는 거야. 기다리는 사람 생각하면 미안하지 않아? 이렇게 남편과 나는 ‘몇 분’ 때문에 자주 싸운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선 싸운다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잔소리를 하고 남편은 조용히 듣고 있는 편이지만, 간혹 굼벵이처럼 움직이던 남편의 기분이 꿈틀하기라도 하는 날엔 긴 전쟁으로 이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가 다투는 이유가 단순히 그 '몇 분' 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남편은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미국과 캐나다를 거쳐 살아왔다. 그 때문에 내가 평생 머물렀던 한국보다 13시간에서 16시간이나 느린 삶의 리듬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는 인종부터 시간관념까지 다른 그에게 '당신이 한국인이랑 결혼했으니 움직이는 속도를 높이라'라고 외쳐봤자, 결국 우리가 캐나다에서 살기로 한 이상 내가 느려지는 편이 더 합당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약속에 늦었을 때조차 휘파람을 부는 건 반칙 아닌가. 그의 여유 있는 모습에 약이 올라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 소리가 남편에게 들릴 리 없는데도 내 심박 속도에 맞춰 춤을 추던 그가 노래까지 부르는 순간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다. 아 진짜 쫌 빨리빨리! 가끔은 이 외국인이 나의 참을성을 시험하고자 일부러 천천히 움직이는 건 아닐까 싶었을 정도로 느긋해서 신기할 때도 있었다. 양반이 따로 없네. 아 맞다 그는 심지어 우리 첫 데이트 날에도 늦었으니까. 그때 참았던 화를 지금 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첫 데이트에 지각이라니 미친 건가. 지하철 출구로 나온 뒤에야 확인한 핸드폰 화면 속 [아마 조금 늦을 것 같다]는 그의 쿨한 영어 메시지에 심통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안에는 ‘미안하다’라는 뉘앙스도 있다. 하지만 영어 원어민이 아닌 내 눈엔 그저 뻔뻔한 말로 읽혔다. 그러니 이름이 'Angel, 천사'라던 그에 대한 평가가 나빠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외국인 얼굴에 관상을 따지는 일이 웃긴다는 걸 알지만, 웃는 인상이 꽤 착해 보였기에 더 배신감이 들었다. 아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첫 만남 이후 3주를 기다린 데이트라 실망스러운 감정을 애써 가라앉히려 해봐도 차디찬 겨울 공기마저 짜증을 부추겼다. 일찍 좀 말해주지. 추워 죽겠구만.
그 무렵 나는 토론토 생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11월부터 시작된 눈과 추위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익숙해지지 않는 대중교통 시스템 때문에 늘 긴장한 상태로 지내다 보니 향수병에 불면증까지 겹쳐있었다. 토론토 대중교통 TTC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타볼 테면 타봐 시발'의 줄임말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교통수단이었다. 지하에서는 인터넷이 끊겨서 지도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없었고, 정류장과 역마다 동서남북을 확실히 파악해야만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광화문이 신촌보다 북쪽에 있는지, 홍대 9번 출구가 정확히 어느 방향인지 따져본 적도 없었다. 길을 잃더라도 몇 분이면 되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거대한 토론토에서는 항상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몇십 분에서 한 시간씩 맞는 방향을 찾아 헤매야 했고, 그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내 삶의 방향까지 잃어버린 거 같아 우울해져가는 중이었다.
이런 내 사정을 알 리 없던 토론토 깍쟁이는 첫 데이트에 늦은 것도 모자라 내가 어느 출구에 있는지 알고 있길 바랐다. "여기가 어디냐니 무슨 말이야. 던밀역이라니까." 그러자 그는 다시 묻는다. 던밀역 동쪽이냐고. 내가 그걸 알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알려줬겠지. 괜히 짜증이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영어로 무례하지 않게 말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문장을 조합해 본다. “모르겠어. 확실한 건 던밀역이라는 거야.” 그때 저 멀리 운전석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오는 그가 보였다. 차에 올라타자 따뜻한 온기만큼이나 마음도 금세 말랑해졌다. 어색한 인사는 제쳐두고 연신 미안하다고 외치며 운전에 집중하려는 그가 안쓰럽게 보이다니, 늦은 그가 아니라 내가 미쳤구나 싶었다.
그렇게 남편이 첫 데이트에서 지각했던 그날을 시작으로, 우리는 그의 시간 감각을 두고 수십 번, 아니 수천 번은 다퉜다. 학교나 회사에 최소 30분 일찍 도착해야 하는 강박이 있던 나는 늘 1~2분씩 늦는 그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왜 고쳐지지 않는지 납득하기 힘들어서 괴로웠다. 답답해하는 나에게 남편은 종종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What's wrong?" 혹은 "How are you feeling?"이라 묻곤 했다. 나는 그 말의 일반적인 뜻이 '위로'라는 것을 외웠음에도 직역한 의미로만 들려서 더 성질이 났다. 묻긴 뭘 물어. '눈치'라는 단어도 모르는 외국인. 왜 내가 화났는지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섭섭함까지 쌓여 씩씩대는 날에는 남편이 먼저 나아지려는 의지를 보여주긴 했으나 희한하게도 항상 그대로였고, 나는 그런 그가 못마땅해서 쉽게 비난하곤 했다. 하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면 영영 못 볼 가능성이 크니까 이젠 나도 모르겠다. 체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코로나가 터졌다. 그리고 그쯤 그의 요상한 시간 감각은 영원히 나와 같아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나, 슬프진 않았다.
만약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서로의 시간 감각과 속도 차이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삶으로 흩어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 어딘가에서, 그는 여전히 토론토에서 서로 다른 리듬으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재난 같던 코로나 덕분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캐나다에서는 한국과 달리 외출과 야간 통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고, 캐나다에서 몇 달만 더 버티다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던 나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그의 콜롬비아 가족들과 생활해야 했다. 그와 너무나 닮은 사람들과 보내는 느릿하고 눈치라는 게 따로 없는 공간이 처음엔 낯설고 답답했지만, 그 속에 머무는 동안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의 부모님과 동생들을 보며 나는 그가 왜 시간에 무심한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시간은 ‘정각에 맞추는 것’보다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느끼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나는 그런 세상에서 온 사람에게 '빨리빨리'를 기준 삼아, 내 속도로만 함께 걷자고 강요하고 있었다.
그와 가족들은 보드게임 한 판을 2박 3일에 걸쳐 마무리하고, 점심이나 저녁을 준비하던 와중에 피자를 시켜 먹고, 낮에 보기로 한 영화를 밤 9시에 틀거나, 이미 봤던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았다. 새해부터 밤새 춤을 추고 놀다가 늦잠을 자더라도 누구 하나 시계를 보지도 않았다. 한국에 계시는 나의 부모님은 오후 1시에 약속이 있으면 오전 11시부터 준비가 완료되어 있던 분들이었기 때문일까. 서로를 재촉하지 않는 분위기가 내게 너무나도 낯설어서 마치 다른 우주에 온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그의 시간 감각을 가장 깊이 이해하게 된 순간은 코로나가 조금씩 끝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시부모님께서 나이아가라 폭포 바로 앞 호텔을 예약했다며 나까지 자연스럽게 초대해 주셔서 어찌나 신나던지.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 기쁘기도 하면서 호의를 그냥 받기엔 양심이 조금 찔렸기 때문에 ‘오후 1시에 출발하자’라는 말이 어긋나지 않도록 이른 아침부터 남편을 깨우며 늦지 않도록 잔소리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차에 오른 건 대략 오후 4시. 더 당황스러웠던 건 차가 폭포가 있는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출발이 늦어져 자포자기하다가 또 불안해지는 마음에 그에게 조용히 어디로 가는 중인지 물어보니 젤리를 사러 간다고 했다. 젤리? 그 말랑하고 쫀득한, 먹는 젤리?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젤리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는 가족들과 함께 젤리 상점에 들어가 각자 좋아하는 맛을 한가득 골랐다. 그는 코카콜라 맛 왕 젤리를 쥔 채, 한 입 먹어보라며 내 앞에서 흔들었다. 흔들리는 젤리만큼 내 마음도 너풀너풀 흔들리고 있었다. 진정해 보려는 찰나 이번엔 차가 다시 집으로 향했다. 신선한 커피를 내린 채 그냥 두고 왔기 때문이라나. 아니 아까 그 젤리 가게 바로 옆에 별다방 있었는데요. 그렇게 한참을 돌고 돌아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둑어둑 해가 지고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게 뭐람. 잔뜩 실망한 내 마음은 숨긴 채 어둠이 짙은 창문 밖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던 그때, 남편의 여동생이 마치 감탄하듯 "호텔 뷰가 이렇게 예쁠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오면 좋았을걸"하고 아쉬워했다. 그게 다였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짜증도 분노도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아름다운 여행담이 되어버린 듯했다.
그런데 만약 이 나이아가라 폭포 여행이 그의 가족과 함께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랑 그만의 여행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과연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그를 기다릴 수 있었을까. 출발이 늦어지면 늦어지는 대로 여유를 즐기고, 갑자기 젤리를 사러 간다고 해도 ‘그래 그러자’ 하고 따라갔었을까. 손해를 보더라도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집에서 자란 그를, 나는 왜 자꾸 바꿔보려 했을까. 천천히 움직인다고 해서 무너질 세상도 아닌데. 물론 중요한 날이면 신기할 정도로 절대 늦지 않는 그의 얄미운 부지런함에 문득 우리의 첫 데이트가 떠올라 약이 오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를 따라 조금 느리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렇게 서로의 속도를 조금씩 맞춰가는 일은,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살아온 우리가 마음을 나누는 방식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다른 시간에 살았던 우리가」
- 발행일 2025년 8월 6일
- 글쓴이 지영
- 작은배가 진행하는 <일상묘사 : 수필 합평 모임>에서 탄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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