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보」, 윤 재

「둘보」, 윤 재

“나는 자기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 관계를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거야.
당장은 까치와 후추가 언니의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수 있어.
하지만, 그런 마음을 먹는 노력이라도 해.”

와이프와 연애하던 시절, 내가 유일하게 꺼낸 이별 경고였다.

몇 해 전, 강남이 수중 도시가 된 날이었다. 물에 잠긴 차 위에 양복 입은 남자가 앉아 있는 사진을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그날, 나는 서울에 없었다. 동거 중이던 애인을 육지에 두고, 혼자 제주도에 휴가를 갔다. 내가 집을 비우는 날이면, 애인은 늘 본가로 향했다. 나 없는 집에서 고양이들과 혼자 지내는 것을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비가 쏟아지던 날, 서울에 있는 내 고양이 ‘까치’와 ‘후추’는 둘만 집에 남아있었다.
여자 친구가 나에게 카톡을 보내왔다.
 [집 괜찮겠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에 물이 찼을까 봐 걱정이야] 
뭐라고? 고양이들이 괜찮은지 궁금한 게 아니라, 집이 먼저라고? 어처구니가 없다! 
[난 고양이들만 집에 있는 게 불안한데…. 혹시 지금 가서 봐줄 수 있어?]라고 답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잠겨서 차가 침수될까 봐 올 수 없다고 했다. 펫캠으로 확인했을 때 괜찮아 보이니 일단 알겠다고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에도 애인은 본가에 있었다. 그날도 비가 왔다. 나는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고,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잠에 들었는지, 내가 집에 잘 들어가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은지 그녀는 연락이 없었다. 서운함이 며칠 전 내린 폭우처럼 쏟아졌다. 이미 서운한 상태인데, 내 걱정까지 안 하는 여자 친구에게 크게 실망하고 화가 났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집까지 걸어갔다. 어차피 눈물로 얼굴이 축축해져서, 몸까지 다 젖어버려도 상관없었다.
나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한 고양이 남매 까치와 후추는 그녀에게 슬프고 버거운 존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녀가 고양이들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래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죄책감도, 서운함도 마주하기 싫어서 도망치고 있었다.

우리가 동거하기 1년 전, 애인의 강아지 ‘나나’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나나는 내 여자 친구 ‘지연’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13살이던 지연과 크리스마스에 가족이 된 나나는 지연이 서른이 될 때까지 함께 했다. 나나의 별명은 ‘김태희 강아지’였다. 사진으로 처음 봤을 때, 너무 귀여워서 꺄악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예쁜 시츄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 북실북실한 털이 꼭 단발머리를 한 것 같았다.
우울의 시간이 길었던 지연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준 건 나나였다. 아픈 나나를 위해 매일 채소와 고기를 넣어 죽을 끓여줬고, 밤마다 나나의 목덜미에 바늘을 꽂고 수액을 맞춰줬다. 그렇게 해야 나나와 지연의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모든 시간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같은 보호자로서, 그녀의 책임감이 숭고하다고 생각했고 존경스러웠다.

 나나가 떠나는 날, 나는 지연과 함께 있었다. 지연이 이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인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나의 역할이었다. 반려동물과 이별하는 과정에서 보호자들은 내 새끼가 나에게 준 사랑만 생각나고, 그 생각은 결국 이별을 후회로 뒤덮는다. 지연과 나나가 인사를 나누는 시간 동안, 얼마나 좋은 언니였는지, 나나가 지연 덕에 얼마나 행복한 견생을 살았을지 열심히 말해줬다. 상실의 아픔은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없어서, 어쭙잖은 위로를 할 바에는 함께한 시간이 아름다웠다고 말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지연은 지나가는 강아지만 봐도 힘들어했고, 예뻐해 달라고 다가오는 까치와 후추를 내치며 울었다. 상실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다른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웠을 것이다. 지연은 그것도 모르고 좋다고 오는 고양이들이 부담스럽고, 나나에게 죄책감까지 느꼈다고 했다. 더해서 까치와 후추를 거부한다는 것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나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니, 지연은 복잡한 감정이 드는지 자주 눈물을 흘렸다.

내가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고 집에만 머물던 시간 동안, 까치와 후추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삶을 끝내고 싶을 만큼 우울한 순간이 찾아와도, 이 두 고양이가 나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죽을 수 없었다.
까치는 4차선 도로 한가운데서 까치(새)에게 공격당하다가 차 안으로 몸을 숨긴 아이였다. 그 모습을 본 당시 내 직장 동료들이 까치를 구해 데려왔고, 나는 그렇게 까치를 처음 만났다. 후추는 전 보호자가 펫샵에서 사 와놓고는 ‘자기 기대만큼 고양이다운 구석이 없다’며 길에 갖다 버리려던 아이였다. 그 얘기를 들은 순간, 나는 후추를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울면 조용히 다가와 얼굴을 핥아주는 까치. 평소엔 만지는 것도 싫어하면서도, 본묘가 아플 때면 내 몸 위에 올라와 자는 후추. 고양이의 본능이라기엔 아직 어렸던 후추에게 점프하는 법과 그루밍을 가르쳐준 것도 까치였다.
우리 셋은 서로를 살리고, 보듬고, 키워준 가족이다.
그런 우리에게 ‘지연’이라는 새 동거인이 생겼고, 넷이서 함께 살기 위해 이사 했다. 한집에 살게 된 우리는 많은 것들이 낯설었다. 고양이들 입장에서는 가끔 보던 아줌마와 같이 살게 되었고, 지연은 심지어 인생 첫 독립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낯선 생명들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서로 함께 사는 것을 적응하는 기간 동안, 나는 아직도 혼자 사는 사람처럼 늦게 귀가하곤 했다. 그런 날들이 많아지자, 집에 돌아오면 고양이들은 거실에, 지연은 방문을 닫은 채 안방에 잠들어 있었다. 지연은 시끄럽고 몸 위를 뛰어다니는 고양이들이 성가셔서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방문을 닫은 건, 고양이를 향한 마음의 문도 닫혀있다는 뜻이었다.
 나나가 아닌 다른 동물과 가족이 된다는 것은 지연에게 아직 어려운 일이었다. 나를 사랑해서 함께 사는 거지, 우리 고양이들이 좋아서 사는 건 아니었으니까. 지연에게 까치와 후추는 ‘여자 친구의 고양이들’이고 지연의 ‘반려동물’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역시 지연의 가족은 아니었다.

어느 날, 내가 술에 잔뜩 취한 채 울며 무릎을 꿇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미워해도, 우리 애들은 미워하지 말아 줘.”
나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 아직 나나와의 이별을 적응 중인 지연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던 본심이 술에 취해 토를 하듯이 쏟아져 버린 것이다. 차라리 토를 쏟아내면 좋았을 것을. ‘나는 여전히 나나를 사랑하고 너와 함께 나나를 기억하고 있는데, 너는 왜 우리 애들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거니.’ 수없이 속으로 삼켰던 말들이다. 그 감정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다. 지연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내 친구들에게 그녀가 ‘나쁜 여자 친구’로만 보일까 봐 두려웠다. 나는 오직 이 이야기를 지연과만 할 수 있지만, 그녀와도 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 사람을 무너트리고 싶지 않았다.

까치와 후추는 지연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그녀를 사랑했다. 엄마인 내가 봐도, 우리 고양이들의 눈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연은 그 사랑을 여전히 부담스러워했다. 더 이상 그녀가 마음을 열어주기만을 손 놓고 기다릴 수 없었다. 그즈음, 지연과 나는 연인이 아닌 부부가 되기로 약속했다. 그건, 지연이 내 고양이들과도 가족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뜻이었다. 엄청난 계기도 사건도 없었다. 그저 인간 둘이 결혼하기로 했을 뿐이다. 그 결심이, 우리 넷의 2막을 열었다.

우리의 2막이 시작될 때쯤, 나는 ‘매일 아침 물 갈아주기’를 부탁했다. 책임감을 사랑으로 만들어 볼 계략이었다. 같이 사는데 나만 고양이를 돌보는 게 억울하다는 핑계로, 지연에게 우리 애들의 삶을 조금씩 건네주고 싶었다. 그 방법이 통했다. 지연은 자연스럽게 까치와 후추의 컨디션을 살피기 시작했고, 고양이들이 평소와 다르면 나보다 먼저 알아채고 말했다.
“후추 턱드름이 심해졌어.”
“까치가 자꾸 눈을 비벼.”
까치가 한쪽 눈을 찡그렸을 때, 병원부터 찾으려는 나를 말린 것도 지연이었다.
“인공눈물 먼저 넣어보자. 병원 안 가도 될 거야.”
나는 성분만 적절하다면, 사람이 쓰는 인공눈물을 동물에 눈에 넣어도 된다는 것도 몰랐던 초보 보호자였다. 경력 20년 차 보호자의 노련함으로, 지연은 보호자 선배님이 되어주었다.

그 사이, 나는 나나 이야기를 피하지 않았다. 기일이 다가오면 나나가 좋아하던 우유를 사 왔고, 나나의 그림이나 인형을 주문 제작했다. 길을 걷다 우연히 강아지를 만나도, 우리는 나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자기야, 시츄 지나간다. 근데 역시 우리 나나가 제일 귀엽네.”
지연은 종알거리는 나를 보며 웃었고, 종종 울기도 했다. 대단한 일도 없었지만, 그렇게 우리는 서로 상실을 함께 견뎠다.
나는 지연이 변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연은 그저 시간을 견뎠고, 나는 그런 지연을 기다렸을 뿐이다. 그 시간 속에서, 까치와 후추는 그녀의 마음을 두드렸고, 지연은 조금씩 문을 열다가 활짝 열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넷이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우리 고양이들 시점으로 나는 ‘엄마’다. 그럼, 엄마의 와이프니까, 지연도 ‘엄마’일 것으로 생각했다. 신혼 초에는 이제 너도 엄마라며, 지연을 엄마라고 지칭했다. “엄마들 바쁘잖아!”, “엄마들 다녀온다.” 이런 말들을 한참 했다. 어느 날 지연이 ‘엄마’라는 호칭이 싫다고 말했다. 아차 싶었다. 까치와 후추의 엄마인 건 나지, 지연은 나나의 언니이고 엄마의 와이프일 뿐이다. 그래도 호칭을 정해주고 싶었다.
 “엄마의 마누라. 어때? 너무 기니까 앞 글자만 따서 불러볼까? 어라, 줄이면 ‘엄마’네…. 엄마라고 부르되 엄마 마누라의 줄임말인 건 어때?”
 당연히 지연은 싫다고 했다. 나나에게도 언니였던 지연이 까치후추의 엄마일 리가 없다. 우리는 침대에 누워 어떤 호칭이 좋을지 단어들을 나열해 봤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단어는 ‘둘째 보호자’였다. 지연은 그렇게 까치와 후추의 ‘둘보’가 되었다. 속으로는 ‘둘보? <둘도 없는 보호자>라는 뜻도 되겠군’이라고 앙큼한 생각도 해봤다.
 
 얼마 전, 둘보 지연과 친구가 데려온 아기 강아지 ‘키위’를 보러 갔다. 지연이 아기 강아지는 쑥쑥 크니까 더 크기 전에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키위를 보러 간다는 소식에, 지연은 키위에게 줄 선물을 잔뜩 사왔다. 그 와중에 인형 물고 뜯기를 좋아하는 후추의 장난감까지 잊지 않고 사왔다. 친구의 아기 강아지 ‘키위’는 이름처럼 갈색 털을 가진 강아지였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두 달 만에 상경한 똥강아지는 아스팔트 바닥과 아파트에 사는 것을 어색해했다. 그 북실북실하고 세상 모든 것을 신기해하는 키위가 우리는 너무 귀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차 안에서 키위의 이야기를 하면서 왔다.
“키위 발 엄청 크더라, 엄청 크겠어.”
“이빨도 좁쌀만 한 게, 무슨 터그놀이를 한다고. 웃겨 죽겠어.”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도, 찍어온 사진과 영상을 보며 한참 키위 얘기를 했다.
그러다 지연이 잠시 이야기를 멈추더니, 따뜻한 숨을 담아 말했다.
“나 근데…. 이제 어떤 귀여운 털복숭이를 봐도, 우리 까치랑 후추가 제일 귀여워.”

그 말에,
지연과 함께 겪은 상실의 시간과, 새 가족이 되어가는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가족이 되기까지 애써온 우리가 대견했고,
비로소 ‘우리’가 된 지연이 기특했다.

나는 지연을 조용히, 꼭 안아주는 것으로 대답했다.


「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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