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의 목록] 신생아를 키우며 떠오른 생각

2026년 5월, 아기와 함께 정신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날것의 목록] 신생아를 키우며 떠오른 생각
안녕하세요, 작은배 강단과 소신입니다.

구독자님들과 가볍고 단순하게 일상을 나누고 싶어서 [날것의 목록]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강단과 소신이 한 달 동안 보고, 겪고, 고민한 것을 목록 형식으로 간단히 기록하려 해요. 사사로운 이야기지만, 목록을 끝까지 읽고 나면 우리 사이는 더 가까워져 있을 거예요.

[날것의 목록]은 매달 한 번,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jagunbae.com에서도 다시 읽을 수 있어요.

👶 신생아를 키우며 떠오른 생각

5월 6일 밤 12시 22분, 고요가 태어났다. 병원에 도착한 후 세 시간 반 만에 고요를 만났으니 그리 긴 진통은 아니었지만, 자연주의 방식으로 진통제 없이 출산했기 때문에 마냥 순탄하기만 한 시간도 아니었다. 태어나자마자 소신의 품에 안긴 고요는 너무 작았다. 우리는 이 작은 아기를 신생아실에 맡기는 대신 병원에서부터 24시간 직접 돌보기로 했다. 퇴원 후에도 조리원에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고요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고요와의 일상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전개가 빠른 드라마를 볼 때처럼 극과 극을 오간다. 고요가 보여주는 드라마의 장르는 매일 매 순간 바뀐다. 코미디에서 신파, 호러, 판타지까지. 아기를 따라 웃고 울면서 이 작은 생명체가 가진 신비로움에 감탄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1️⃣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

고요를 보면 행복이 별건가 싶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만으로 고요의 일과는 끝난다.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고요는 먹자마자 툭하면 게워 내고, 배가 빵빵해지도록 방귀조차 뀌지 않고, 하품을 연달아 하면서도 말똥말똥한 눈으로 깨어있다. 신생아는 아직 소화 기관과 신경 체계가 성숙하지 못해서 먹고 자고 싸기 위해 많은 노력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그 탓에 초보 엄마 아빠만 안절부절....)

다 큰 어른이라고 다를까? 먹고 자고 싸는 삼박자를 완벽하게 맞춰가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좋은 삶이 아닐까 싶다. 고요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어른으로 자라다오.

2️⃣ 지휘자는 강고요

고요가 무럭무럭 자라기 위해서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고요를 보살피고 있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고요를 상전처럼 모시고 있다는 게 더 맞는 말처럼 느껴진다. 고요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가 원할 때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싸고 싶으면 아무 데서나 싼다. 우리는 고요가 휘두르는 지휘봉을 따라 하루 종일 온 집안을 분주히 돌아다닐 뿐이다.

고요는 원하는 것이 명확하다. 문제는, 그와 우리의 의사소통 방식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거다. 고요는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지만, 우리는 아무리 눈치를 살펴도 아직 고요의 마음을 다 읽어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똥 싼 엉덩이를 씻어주다가 갑작스러운 오줌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배고파서 울다가 허겁지겁 젖병을 무는 고요에게 사과하기도 한다. 작은 아기에게 이렇게 강력한 자기 의지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

3️⃣ '나'를 내려놓기

요즘 우리의 하루는 딱 3시간 단위로 돌아간다. 고요가 2~3시간에 한 번 밥을 먹고 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자연스럽게 세 시간 단위로 할 일을 계획하고 있다. '다음 밥 주고 나면 빨래해야겠다.' '이번에는 나도 잠깐 눈 좀 붙여야지.' 하는 식이다. 고요의 스케줄에 따라서 쪽잠을 자고 급하게 끼니를 챙기는 요즘이지만,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극심했던 피로도 이제는 조금 견딜 만하다.

살면서 나를 이렇게 완전히 내려놓고 남에게 맞춰 살아본 적이 있었나 싶다. 지금까지는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 그런 것들은 안중에서 사라지고 오직 고요의 요구만이 전부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나'라는 틀에서 벗어나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웠는데, 고요는 한 순간에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놨다. 완전히 다른 쓰임으로 살고 있는 요즘의 일상이 상쾌하기도 하다. 새로운 기분이다.

4️⃣ 혼돈의 한가운데에서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아기를 키웠을까? 고요에게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우리는 허겁지겁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검색창을 연다. '신생아 24시간째 똥을 안 싸요' '신생아 여드름' '아기가 눈 뜨고 누워 있으면 놀아줘야 하나요'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많지 않으니, 인터넷과 AI에게 더 의지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재밌는 건, 검색 결과가 우리를 안심시켜 줄 순 있어도 문제를 없애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모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줬다. (똥도 결국엔 나왔고, 여드름은 조금씩 잦아들었고, 고요는 혼자 놀다가 푹 잤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인 걸까? 하지만 육아가 처음인 우리가 모든 걸 파악하고 해결할 수는 없다. 아무리 ChatGPT가 자세한 정보를 알려준다고 한들, 정답을 알 수 없는 문제는 끝없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이럴 때 필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눈먼 의지가 아니라, 혼돈의 한가운데에서 침착하게 고요를 살필 수 있는 단단함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열쇠는 고요가 쥐고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기보다, 눈앞에 있는 고요에게 집중하며 한 번 뿐인 신생아 시절을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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