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손님들
가게를 운영하며 겪는 소소한 경험을 일기처럼 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치지레이지를 운영하며 겪는 소소한 경험을 일기처럼 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가지는 귀중한 생각과 감정이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보물 같은 순간이 오랫동안 남길 바라는 마음에 치지레이지 운영일지 트위터까지 개설했다.
가게 사장의 일상적 경험이 보통 사람들에게 재밌게 읽힐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루하면 또 어떤가. 운영일지는 타임캡슐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긴 시간이 지난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꺼내보게 될 것만 같다.
앞으로 쓸 운영일지의 예고편으로 기억에 남는 손님들을 떠올려봤다. 의식의 흐름대로 적었기 때문에 순서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1. 외국인 손님 두 명이 들어오셨다. 여행을 오신 걸까. 주문을 받으며 소소한 질문을 던졌다. 아, 바게트의 나라 프랑스에서 오셨구나. 주문은 두부 데리야끼 샌드위치 두 개. 초집중 상태로 바게트를 데우기 시작했다. 내 바게트는 어떤 평가를 받게될까. 무대에 선 것처럼 두근거렸다. 샌드위치를 다 드시고 아이스크림을 추가 주문하러 오신 손님. 흐뭇한 미소를 보며 안심했다. 음식이 어떠셨냐 물어보자 빵이 완벽해서 너무 맛있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프랑스 사람도 만족하는 바게트를 구웠다니. 좋았스! 주먹을 불끈 쥐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2. 태풍이 오던 날. 단골 손님이 오셨다. '바람 많이 불죠?'라는 인사에 손님은 생각에 잠기더니, 기상 전문가처럼 지금 부는 바람의 속도와 방향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알고 보니 윈드서핑을 좋아하셔서 아침에 일어나면 바람부터 체크하신다고.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살아보셨지만 제주만큼 서핑하기 좋은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똑같은 제주에 살아도 나는 자연을 즐기며 살지 못하는구나.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3. "가격이 너무 싸요. 만 원으로 결제해 주세요." 가게를 열고 처음으로 팁을 받았다. 가끔 상상만 했던 일이라 소름 돋을 정도로 놀랐다. 6,400원짜리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정성을 알아봐 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뿌듯한 마음에 종일 가슴이 두근거렸다.
4. 어느 날 아침, 가게를 청소하다가 책장 한 구석에서 편지 봉투를 발견했다. 봉투 안에는 직접 만든 것처럼 보이는 팔찌가 2개 들어있었다. 손님이 실수로 두고 간 걸까? 두 개인 것 보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 것 같기도 하고. 알고 보니 제주를 떠나 고향으로 이주하는 단골 손님이 몰래 남겨 둔 작별 선물이었다. 그때 그 손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실까? 그리운 손님을 기다리는 사장의 마음은 외롭다.
5. "오늘은 아이스크림 안 시키기로 약속했는데 옆 테이블 언니가 먹는 거 보더니 너무 먹고 싶다고 하네요." 어린 따님을 데리고 종종 오시는 어머니는 아이스크림을 추가로 주문했다. 오물오물 샌드위치와 아이스크림을 먹는 어린이 손님을 보니 우리 음식에 자신감이 생겼다. 아이는 거짓말 못 하지. 우리 음식이 진짜 맛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