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의 의미
우리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정말 정말 잘 하고 싶을 뿐이다.
돌아보면 목표를 이루고 나서 기대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도, 오랜 기간 준비했던 연극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에도, 그토록 원했던 선배의 인정을 받았을 때에도, 매출 목표를 기대 이상으로 달성했을 때에도. 나의 감정은 행복보다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안심'에 가까웠다. 목표는 신기루와 같아서 달성하는 순간 사라지고, 새로운 목표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목표지점에 도착했음을 자축할 시간은 보통 길지 않다. 다시 달릴 정도의 체력이 회복되면 누가 언제 세웠는지도 모르는 새로운 목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늘 불행했다는 말은 아니다. 나의 행복은 목표를 세울 땐 상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있었다. 놀라울 만큼 집중이 잘 되었던 독서실에서의 하루, 연습 기간을 거쳐 뛰어나게 연기하는 배우의 얼굴을 보던 희열, 존경하는 선배와 협업하며 준비한 10분의 프레젠테이션, 직접 부딪히며 배웠던 거래처 설득의 방정식. 그만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을 때 '목표를 달성하면 얼마나 기쁠까'하는 상상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대신 '오늘만큼 내일도 뿌듯하다면 할만하다'라는 감각이 나를 끝까지 달리게 했다. 달리 말하자면, 나는 그저 달리는 것이 좋아서 달렸다.
진짜 행복과 성취감은 결과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서 온다. 나는 이 사실을 아주 많은 목표를 세우고, 때로는 달성하고, 꽤 자주 실패하면서 깨달았다. 목표를 세웠기에 달성한 것이 아니라, 과정을 이루는 많은 순간들을 나는 사랑했을 뿐이고, 그래서 가끔은 결과도 좋았을 뿐일지 모른다. 그러니 애초부터 목표는 단순히 결괏값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약 그 목표가 타인의 것을 기준 삼아 세웠진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남편과 '제주도에 비건 샌드위치 샵을 열어보자'고 이야기했을 때, 그건 목표가 아니라 설레는 우리의 마음이었다. 목표가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그 순간 충분히 설레지 않고 충분히 찌릿하지 않았다면 (많은 일에 그러했듯)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브랜드의 이름을 'CHEESYLAZY'로 지었던 최초의 이유는 그저 똑떨어지는 어감 때문이었지만 이 이름을 진지하게 사랑하게 된 건 'lazy'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이 일만큼은 내가 지금껏 해왔던 그 어떤 일보다 게으르게 하고 싶다. 목표 없이 자유롭게, 순간에 몰입하면서. 누구의 기준도 아닌 우리의 기준에 맞춰 욕심내고, 포기를 하더라도 우리의 기준에 맞춰 포기하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 가장 게으른 사장이 되기로 했다.
치지레이지는 어떤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시작점은 시작점으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브랜드가 뭐 어떻게 되려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저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정말 정말 정말 잘 하고 싶을 뿐이다. 즉 목표 없이 게을러 보이지만 하루 종일 일 생각만 하는 상태라는 뜻이다. 잘 하고 싶다는 욕심과 잘 할 수 있을까 싶은 기분 좋은 긴장감. 지금은 이 마음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