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기 위한 실험
이 실험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십 대였던 나에게는 사춘기랄 것이 없었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인데다 교우관계는 무난했고 세상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대학을 졸업할 즘 뒤늦은 성장통이 찾아왔다. 나는 나를 아직 잘 모르겠는데 면접관 앞에서 스스로를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니. 커리어의 시작을 앞두고 하나의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다운 삶의 방식과 일의 형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사를 선택하고 일을 시작하면 고민이 일단락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오산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마음속에서 의문은 끝없이 피어났다. ‘이 일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이 환경이 나에게 필요한 최선인가?’ 처음에는 회사 안에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직무를 변경하거나 색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해 보는 식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풀 수 없는 질문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전혀 다른 환경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쯤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것은 상당히 지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환경적 조건,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의 성향,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의 종류나 크기 같은 것들을 나는 그 과정에서 배웠다. 반면 도무지 회사 안에서 확인할 수 없는 질문도 있었다. ‘일하는 규칙과 환경을 마음대로 꾸릴 수 있다면 과연 더 행복할까?’ 남이 만든 규칙을 따르며 일하는 것이 나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점점 자주 하게 됐다.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와 창업이라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했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원했던 일을 하니까 행복한가요?"
"가게를 오래 준비했는데, 식당을 열고나서 막상 후회한 적은 없나요?"
하지만 나는 이런 물음 앞에서 종종 당황스럽다. 나에게 치지레이지는 ‘결국 이룬 오랜 꿈’이 아니다. 공들여 오래 준비하긴 했지만 이루지 못하면 후회할 만큼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치지레이지를 시작하면 무조건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확신한 적은 더더욱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치지레이지를 시작한 걸까? 나에게 치지레이지는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한 실험과도 같다. 나와 강단은 ‘주인이 되는 일을 함으로써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이것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실로 치지레이지를 선택했다. 가게를 연지 두 달을 넘긴 지금까지는 실험 결과가 꽤 만족스럽다. 하지만 회사를 다닐 때 그랬듯이 질문은 계속해서 새롭게 생겨난다. ‘이렇게 일해도 문제없이 먹고 살 수 있을까?’ ‘그저 주인이 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질문의 난이도는 조금씩 높아져만 간다.
이 실험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무리 변수를 바꿔가며 실험해 봐도 먹고사는데 실패할 수 있고, 치지레이지라는 환경 속에서 확인하고 싶은 가설이 동나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실험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답게 살기 위한 실험의 묘미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실험에 에너지를 원 없이 쏟는 것만이 나답게 행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 믿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