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단식 일지 (24/6/16~6/20)

<혹시 나도 도파민 중독일까?> 3편

도파민 단식 일지 (24/6/16~6/20)

배움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도파민과 중독에 대해 머리로 이해했으니, 이제 도파민 단식을 실천에 옮겨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도파민 단식’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과하게 하던 것을 멈추고, 여백을 채우지 않으려는 노력’ 정도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지난 일주일간 자제하려 한 행동은 크게 두 가지, 1. 과한 스마트폰 사용(유튜브, 인스타그램)과 2. 쉼 없이 일하는 습관이다. 의식 없이 지내다 보면 무심코 지나치게 집착하곤 했던 일들이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했다. 7일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큰 변화를 만들었다고 말하기는 무리지만, 무료한 시간을 즐기려는 노력이 나에게 꼭 필요한 시도였다고 내내 생각했다.

Day1. 수능폰(?)을 구입하다.

도파민 단식을 결심한 1일 차 아침. 늦잠을 자고 눈을 떴는데, 강단이 깨기를 기다리다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유튜브 앱을 켰다. 그리고 1시간 반 순간 삭제. 첫날부터 망했다는 기분을 느끼며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외출하기로 했다.

스마트폰 없이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에게 필요한 건 스마트폰과의 완전한 격리야!’하는 깨달음이 들었고, 강단의 도움을 받아 당근에서 폴더폰을 구입했다. 전화와 문자만 가능해서 일명 ‘수능폰’이라 불리는 제품이 2개 있어서 강단과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새로운 폰에 유심칩을 옮겨 끼우고 스마트폰은 가방 안에 넣어두었다.

나에게 필요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마련했다는 자유의 감각이 밀려왔다. 자기 전에 새 휴대폰으로 필요한 연락처를 옮기고, 설정 메뉴에 들어가 이것저것 눌러보며 벨 소리를 바꿨다. 이 귀엽고 단순한 휴대폰이 중독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무적 방패처럼 느껴졌다.

Day2. 하루가 원래 이렇게 길었던가?

하루가 길다. 길어도 너무 길다. 주말인 오늘, 일을 위한 업무는 일절 하지 않기로 결심한 데다가 심심함을 채울 숏폼 콘텐츠까지 없으니 시간이 남아돌았다.

문득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몇 번의 충동을 참고 무사히 고비를 넘기며,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스마트폰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캘린더, 할 일 목록, 메일 앱을 열어 보던 습관적 충동이 엄습할 때마다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하루를 잘 보내고 있는지, 놓치고 있는 정보는 없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강박. 콘텐츠를 적게 보고 싶어서 휴대폰을 바꿨을 뿐인데 그보다 더 큰 문제를 마주한 느낌이다.

Day3. 보장된 재미만 찾게 되는 이유

결국 ‘아! 너무 심심해!’라는 말을 뱉어버렸다. 그러고는 점심 먹는 식탁에서 넷플릭스를 틀었다. 이미 여러 번 봤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언의 스탠드업 쇼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언제나 보장된 재미만 찾아다녔다. 재미가 없으면 바로 ‘닫기’ 버튼을 눌러 멈출 수 있는 유튜브 영상, 사람들이 다들 재밌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는 영화, 재밌는 부분만 쏙쏙 골라 편집한 요약본. 가끔 부모님 댁에 들러 TV를 보다가 지루한 장면이 나오면 ‘장면 넘기기’를 하고 싶다는 당황스러운 충동이 일 때가 있다.

보장된 재미로만 일상을 꽉 채우고 싶은, 그저 그런 것은 조금도 견디지 못하게 된 것도 높은 자극에 길든 나의 뇌 때문이 아닐지 혼자 생각해 본다. 그래도 자기 전 2시간 동안은 스크린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고, 덕분에 미뤄뒀던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었다.

Day4. 일을 멈춰야 해

주말이 지나가고 업무를 시작하다 보니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스마트폰만 없으면 될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노트북으로 캘린더, 메일 앱, 할 일 목록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있었다.

일에 대한 중독 증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업무에 대한 몇 가지 제약을 만들 필요가 있겠다 생각했지만, 방법을 몰라 미루다가 결국 자기 직전까지 일을 해버렸다. 침대에 누워서도 다음날 해야 할 일을 떠올리다가 늦게 잠들었다. 내일은 꼭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Day5. 여백을 여백으로 두기

일 자체에 제약을 두기엔 막막해서, 일을 하다가 중간에 멈출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일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대신 ‘커피 마실 땐 커피만 마시기’ 원칙을 가장 먼저 만들었다. 업무 중 갖는 커피 타임을 도파민 식히는 시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식사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동업자이자 남편인 강단과 매 끼니를 함께하다 보니 의식 없이 일 이야기를 불쑥 꺼내곤 했는데, 앞으로는 업무와 관련된 대화는 자제하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자기 전엔 할 게 없어서 가만히 소파에 누워있었다. 평소 같으면 내일 할 일을 미리 해두거나 숏츠를 볼 시간이었다. 심심함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첫 사례는 아마도 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피커로 좋은 음악을 골라 틀었다. 이렇게 음악만 들으며 보내는 시간이 대학 시절 이후 처음이라 낯설었다.

흘러가는 생각과 음악에 집중하다 보니 벌써 잘 시간이 됐다. 가만히 있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몸소 배우고 있다.


🧘 도파민 단식, 쉽지 않더라고요.

밭을 모두 태워 농사를 짓는 화전민처럼, 과했던 행동을 하나씩 삭제하는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화전민은 불에 탄 나무와 풀의 재를 비료로 사용한다고 하더라고요. 사라진 습관들이 저의 일상을 더 비옥하게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멈추지 않고 노력을 이어 나가려 해요. 폴더폰도 앞으로 쭉 사용할 예정입니다.

지난 레터를 읽고, 영재님이 방명록에 생각을 남겨주셨어요.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도파민 단식 대신 '도파민 소식'이라는 개념을 제안해 주셨는데요. 결국 모든 것은 균형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레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을 들려주세요. 혹시 지난 일주일간 도파민 단식을 시도했다면, 그 후기를 나눠 주셔도 좋겠습니다. 방명록에서 항상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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