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이 가진 뜻밖의 효과
대단한 업적 보다, 작더라도 온전히 내 것인 성취.
요 며칠 기분이 우울했다. 생각나는 이유야 몇 가지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우울함의 핵심은 아니라서 꼭 집어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축 처진 마음으로 소중한 주말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다.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차 키와 책 한 권을 챙겨 평소 자주 가는 동네 카페로 향했다.
운전석에 앉아 키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시동을 건 다음 뭘 해야 하더라? 아 맞다, 사이드 브레이크.’ 이 단순한 동작조차 굼뜨고 어색한 나는 1개월 차 초보 운전이다. 지금은 차를 몰고 볼일을 보러 곧잘 나서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운전을 무서워했다. 최근까지도 남편이 조수석에 앉아 운전을 함께 봐주었던 지라, 아무도 없이 혼자 운전을 하면 긴장한 나머지 입술을 심하게 다물어서 입 안이 얼얼해질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나는 우리 집 주말 운전사로서, 도로에 차가 많지 않은 주말에만 운전하기를 자처했다. 하지만 이날은 금요일 오후. 초보에게는 예상되지 않는 도로 상황조차 큰 변수였다.
‘차근차근히 해보자.’ 여러 번 가봤던 곳이고 익숙한 동네이니 괜찮을 거라 마음을 다독이며 출발했다. 갓길 주차가 가득 되어있는 좁은 골목에서 속도를 너무 느리게 낸 나머지 뒤에 있는 차로부터 매서운 빵빵 세례를 받아야 했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카페 앞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 앉아 잠시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는 불과 15분 전만 해도 꽉 막혀있던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을 느꼈다. 내 힘으로 차를 몰고 짧은 마실을 나왔을 뿐인데, 심지어 아직 커피는 마시지도 않았는데.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처럼 스스로가 조금 더 예뻐 보였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 될 때. 지금 하는 일이 최선인가 의심이 들 때. 다가올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될 때. 나는 줄곧 대단한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우울한 날 나를 웃게 만드는 건 빈틈없이 짜인 미래 계획이나 안정적인 대안이 아니었다. 혼자 운전한 10분의 시간, 숨이 가빠도 꾹 참고 달렸던 기억, 친구들과 함께 만든 독립 서적.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 힘으로 직접 이뤄 본 경험이 바람 빠져 흐느적거리는 나에게 펌프처럼 공기를 넣어주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잠시 책을 읽다 예정보다 빨리 카페에서 나왔다. 기분이 이미 상쾌해져서 더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그날 할 일을 마무리했다. 할 일을 끝내니 기분은 더 좋아졌다. 작은 성취 덕분에 또 다른 작은 성취를 이뤘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이런 경험이 내 마음에 쌓여 단단한 구심점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치고 우울한 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고 싶을 때 꺼내서 쓰기 위해서라도, 대단한 업적 보다 작더라도 온전히 내 것인 성취를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